말의 솜씨보다 향기가 더 중요
적게 사실만 적시에 사랑으로
제대로 교육하고 모범 보여야
막말 정치인 반드시 솎아내자
초등학교 시절, 학기말 성적표에 해당하는 가정통신문의 국어란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네 가지를 평가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었다. 소견이 짧았기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중요하니까 당연히 가르치고 평가해야겠지만 듣기와 말하기를 왜 평가하지? 언어 장애라면 몰라도 선생님 말씀 다들 잘 알아듣고, 친구들끼리 하고 싶은 말 모두 잘하고 있는데….’
받아쓰기를 하다 보니 듣기는 그나마 조금 의미가 있겠다 싶었지만 말하기를 평가한다는 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해되지 않았다. 말하기도 중요하다는 걸 처음 깨달은 것은 한참 뒤 TV를 접하면서부터다. TV에 등장하는 도시 아이들, 특히 서울 아이들이 말을 참 조리 있게 잘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러움을 갖게 된 건 당연지사. 북한 아이들의 또렷또렷한 말솜씨엔 주눅이 들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말을 잘하려면 그걸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과거 우리네 학교교육 환경은 말하기와 거리가 멀었다. 줄곧 입시위주 주입식 수업이었으며, 발표와 토론식 수업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선생님한테 질문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평가시험도 지필로만 했으니 말하기 학습의 기회가 원천 봉쇄됐던 셈이다. 그렇다고 부모한테 특별히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말은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인간 고유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마음의 소리인 셈이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큰 만큼 말을 참 많이 한다. “보통 사람은 시간으로 따진다면 일생 동안 적어도 5분의 1을 말하는 데 소비한다. 하루 평균 50페이지짜리 책 한권 분량의 말을 하는 셈이다. 또 보통 남자는 하루 평균 2만5000개의 단어를 말하며, 여자는 남자보다 5000개 더 많은 3만개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꼼꼼하게 이런 계산을 해본 어느 미국 학자의 조사 결과다.”(홍사중의 ‘삶의 품격’)
누구든 세상을 살면서 말을 잘하면 참 편하고 좋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말을 또박또박 솜씨 있게 하는 것은 부러움 살 만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을 품격 있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본인의 선한 뜻이 밖으로 정확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존경받기 위해서도 그렇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것보다 품격 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부쩍 자주하게 됨은 나이 들었음의 표현일까.
품격 있는 말이란 무엇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급적 적게, 조심스럽게 말하라고 가르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입이 하나인데 귀는 둘이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다.’(탈무드) ‘말이 입 안에 있을 때는 네가 말을 지배하지만 입 밖에 나오면 말이 너를 지배한다.’(유대 격언)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이는 도끼와 같다.’(명심보감) ‘말을 하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말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낫다.’(사아디 고레스탄)
불쑥 내뱉는 한마디가 천명, 만명의 귀와 입을 통해 순식간에 옮겨진다는 걸 생각하면 말은 참으로 조심해서 할 일이다. 성경도 이런 점을 각별히 상기시킨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11)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 4:29)
말이 품격을 갖추려면 적게, 조심히 하는데 더해 향기가 있어야 한다. ‘바르게 말하는 법’에 관한 황명환 목사(서울 수서교회)의 설교는 명쾌해서 좋다. 황 목사는 말할 때 세 개의 문을 통과하라고 조언한다. ‘첫째 문: 사실만 말하라. 둘째 문: 지금 이 순간 말하는 게 적절한지 생각하고 말하라. 셋째 문: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말하라.’ 셋째 문의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말하는 사람의 향기 아닐까 싶다.
겸손은 향기의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된다. 친구 중에 말을 참 품격 있게 한다는 느낌을 주는 이가 있다. 우선 조용하게 말한다. 칭찬과 덕담을 주로 한다. 남의 말을 끊는 법이 없고, 대화에 천천히 끼어든다. 어떤 사안이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도 생각이 비슷한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자기주장을 편다. 논쟁이 된다 싶으면 살짝 빠져버린다. 종합하면 겸손 아닐까 싶다.
이 친구한테 부담되는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퇴계 선생의 태도를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퇴계 제자 김성일은 퇴계언행록에 이렇게 기록해 놨다. “(선생은) 비록 여러 의견이 다투어 일어나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셨고,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말이 다 끝난 다음에 서서히 조리 있는 한마디로 말씀하셨다. 그때에도 반드시 당신의 말씀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으시고, 오직 ‘내 부끄러운 견해가 이러한데 어떨까’라고 하셨다.”(문광훈의 ‘괴테의 교양과 퇴계의 수신’)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말솜씨는 뛰어나지만 도무지 품격이란 게 없다. 여야, 선수(選數) 불문하고 막말과 욕설이 다반사다. 막말이 정치혐오를 부른다고 서로 삿대질이니 목불인견이다. 내년 봄 온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그런 정치인을 솎아내는 수밖에 없다. 멀리 보아 가정과 학교에서 ‘품격 있게 말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막말이 사라질 것 같다. 가장 좋은 가르침은 어른들의 모범적 언행 아닐까 싶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