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창호] 어느새 대세… 현금복지의 늪

입력 2019-11-26 04:04

요즘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선 ‘청년 기본소득’ ‘농어민 기본소득’이 대세가 돼 가고 있다. 청년들에게 현금을 주는 정책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5년 성남시장 시절 처음 도입한 정책이다. 이젠 성남을 넘어 경기도 전체, 서울시로 확대됐고, 아마도 조만간 전국 지자체들이 가세할 전망이다.

농어민 기본소득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가구에 일정한 금액을 주는 제도다. 농어업 인구가 다수인 지방 지자체들이 속속 이 정책을 도입하는 추세다. 출산인구가 급감해 인구절벽 위기에 놓인 지자체들은 신생아를 낳는 가정에도 출산장려금을 아끼지 않고 주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시대에 국민의 복지 수요는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구성원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복지 안전망을 확보하는 게 선진사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금을 나눠주는 식으로 국민의 복지 욕구를 전부 충족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금복지의 함정은 이를 상수(常數)로 여기는 수혜자들이 계속 증가한다는 데 있다. 수혜자들이 이 돈을 ‘언제든 받을 수 있고,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돈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현금이 남아도는 중동의 산유국, 그중에서도 가장 서구적인 사회 형태를 띤다는 아랍에미리트는 모든 국민에게 현금복지를 시행하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에겐 용돈 명목으로 매달 500달러 정도의 돈을 준다. 대학생이 되면 그 배에 해당하는 돈을 주지만, 대학에 가지 않아도 용돈은 계속 받을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에 가면 흔히 듣는 소리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은 전부 외국인”이라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힘이 드는 노동, 온 힘을 다해야 하는 학업은 외국인한테 맡기면 그뿐이라는 사고방식이 전 국민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랍에미리트가 극단적인 경우라면, 유럽 각국의 형편은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마주할 개연성이 높은 현실이다. 경제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탈리아, 스페인은 물론 경제부국인 독일과 스웨덴의 고민도 점점 심각해지는 현금복지 문제다. 경제활동에 종사해 세금을 낼 수 있는 생산인구는 급감하는 반면, 복지혜택으로만 삶을 연명하는 노령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현금복지는 이를 충당할 세금을 걷을 수 있어야 가능한 복지제도다.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복지비용을 감당할 만한 경제 규모를 갖추지 못하는 국가는 전체가 부도 위기에 내몰리는 셈이다. 그런 경제 규모를 갖지 못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매년 국가부도 상황을 넘기기에 급급한 이유다. 복지사회주의를 주창하던 온건좌파가 50년 이상 집권했던 스웨덴의 정치권력이 온건우파로 바뀌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현금복지였다.

모든 종류의 현금복지 정책이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는 거의 없다. 아동수당과 출산 장려금에 비례해 인구증가율, 신생아출산율이 증가한 국가는 없다. 이미 1970년대부터 인구감소 문제를 체험한 미국과 유럽은 이 정책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자, 인구정책을 다른 방향으로 완전히 틀어버렸다. 현금복지에 쏟아붓던 혈세를 아이들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학교제도와 보육 시스템을 바꾸는 데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소득과 비슷한 형태의 청년실직수당제는 만년 실업자를 양산하는 제도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미국에선 이 수당을 받는 청년들이 직업을 갖는 것보다 수당 받을 자격을 유지하는 데 더 혈안이 된다는 말까지 듣는다. 지금은 신선해 보이는 청년소득, 농어민소득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대안일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훨씬 낮다.

늪은 항상 습지 근처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습지는 따뜻하고 생물이 살기 좋은 기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모든 게 풍부할 때에만 발이 쑥 빠져버리는 늪이 생겨나는 셈이다. 현금복지도 이런 늪과 비슷하다면 과장인지 모르겠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