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로 심판” 투표율 역대 최고 열기… 유령 유권자 제보 줄이어

입력 2019-11-25 04:04
홍콩 유권자들이 24일 홍콩 사우스호라이즌스 커뮤니티센터에 설치된 투표소 인근에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홍콩은 이날 18개 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 지방선거를 실시했다.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갈등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반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홍콩의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투표라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시위의 분수령이 될 구의원 선거가 24일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번 선거는 6개월째 거리에서 반정부 투쟁을 하는 시위대와 강경 진압으로 맞서고 있는 홍콩 정부에 대한 민심을 확인하는 시험대로 주목받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18개 선거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 선거가 이날 오전 7시30분(현지시간) 일제히 시작됐다. 투표는 오후 10시30분까지 진행됐고 선거구별 당선자는 25일 새벽부터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소마다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이 길게 늘어서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위니 렁(45·여)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경찰의 시위대 진압방식을 보고 꼭 투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91세 어머니와 함께 투표하러 온 메이 호(61·여)씨는 “문화대혁명 같은 어두운 시대를 거치면서 폭력을 충분히 경험했다”며 “사회는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인 조슈아 웡(22)씨는 “경찰의 야만을 중단시키고, 자유 선거를 요구한다면 지금은 투표할 때”라고 호소했다.

선거가 과열되면서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는 ‘가짜 유권자’를 만들려는 사례 등을 포함해 부정선거 고발 사례가 4800여건 접수돼 후유증도 예상된다. 홍콩 영주권을 가진 중국 본토 거주자들이 대거 홍콩에 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번 선거의 등록 유권자는 홍콩 전체 인구(739만명)의 55%가량인 412만명으로 2015년(369만명)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18~35세의 젊은 유권자 등록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는데, 이들은 친중국 성향 정치인을 축출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SCMP는 분석했다. 홍콩 시립대의 에드먼드 청 교수는 “친중 진영은 본토 출신과 노인층 중심의 풀뿌리 공동체와 연대해 지방의회 선거를 압도해 왔지만 최근 홍콩 시위 사태는 민주 진영에 대한 지지를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투표율도 크게 높아졌다. 지금까지 홍콩 역사상 최고 투표율이었던 2016년 입법회 의원 선거 당시의 58%(투표자 220만명)를 훌쩍 넘겨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홍콩 선관위에 따르면 투표 시작 3시간 만에 약 72만명(17.43%)이 투표해 2015년 구의원 선거 당시 같은 시간대 투표율(6.79%)의 3배에 다다랐다. 오후 5시30분에 투표자 수는 233만명(56%)을 기록했고, 오후 7시30분에는 260만명(63.7%)을 넘어섰다.

이번 선거에서는 친중국 및 범민주 진영 중 승리한 쪽이 홍콩 행정장관 선출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117명을 모두 가져간다. 2015년에는 친중파 진영이 선거인단 117석을 독식했다. 당시 선거인단은 친중파 726명, 범민주파 325명으로 구성돼 이듬해 캐리 람 행정장관이 무난히 당선됐다.

하지만 2003년 국가보안법 사태 직후 치러진 구의원 선거 때처럼 홍콩 시위 사태로 인해 범민주 진영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범민주 진영이 승리한다면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면서 정치개혁 요구가 다시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