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유상철!”
24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상주 상무의 K리그1 경기가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경기 시작 전 30초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날 K리그 경기에서부터 이어진 유상철(48) 인천 감독의 쾌유를 기원하는 팬들의 약속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홈팬들은 세찬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일어서서 유 감독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원정석에 있던 상주 팬들도 함께 연호했다. 이 순간만큼은 1만1916명 모두가 유상철이었다. 2대 0 승리로 경기가 끝난 뒤 팬들과 선수들의 얼굴은 물기로 흠뻑 젖었다. 심술궂은 빗줄기인지 감격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도 이를 닦는 사람은 없었다.
이날 경기는 유 감독이 닷새 전 췌장암 4기 투병 사실을 밝힌 후 처음 열린 경기였다. 시즌 마지막 홈경기이기도 했다. 유 감독은 그러나 연민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고 못 박았다. 경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감독이 아프다고 해서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했다. 오직 팬들을 위해 이기는 경기를 보여주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팬들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경기 전부터 매표소 옆 공간엔 응원 메시지를 작성하려는 수십명의 팬이 줄을 섰다. ‘쾌차해 인천을 계속 지도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회사원 김재완(48)씨는 “(투병)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 화면에서 뵌 모습도 너무 안 좋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아파서 슬펐어요. 빨리 나으셔서 인천에 계속 계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와 함께 온 김대호(10)군도 응원했다.
경기장 안에서는 유 감독의 국가대표 시절 유니폼과 ‘희망은 잠들지 않는 꿈’ ‘우리 함께 이겨내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걸개가 관중석 곳곳에서 발견됐다. 하프타임 땐 밴드 부활의 ‘새벽’이 흘러나왔다. 팬들은 휴대폰 조명을 켜고 ‘우리가 살아온 날보다 내일이 더 길 테니’라는 가사를 따라 불렀다.
유 감독은 시즌 도중인 지난 5월 12일 인천 감독직을 맡았다. 전임 욘 안데르센(56) 감독 시절 11경기 1승 3무 7패로 최하위였던 인천은 유 감독 선임 이후 25경기 동안 5승 9무 11패로 1부 잔류 가능 순위(10위)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홈경기에선 6무 6패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비바람에 입김이 나올 정도로 체감온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인천 선수들은 필승의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 투병 중인 감독에게 홈 첫 승의 기쁨을 안기겠다는 의지가 눈빛에 선연했다. 수비수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공격에 나서면서 골을 노렸다. 유 감독은 비를 맞으면서도 사이드라인 앞까지 나와 선수들을 격려했다.
간절함이 하늘을 움직였을까. 교체카드로 들어간 문창진이 후반 30분 포문을 열었고 올 시즌 무득점에 그쳤던 외인 케힌데가 후반 43분 쐐기골을 터뜨렸다. 케힌데는 유 감독에게 안겼다. 이렇게 뭉클한 기적이 만들어졌다.
경기 후 유 감독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환했다. 선수들의 노고도 격려했다. 팬들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으며 이렇게 다짐했다. “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완쾌돼서 다시 운동장에 서겠습니다.”
인천은 이날 승리로 승점 33점을 따냈다. 오는 30일 경남 FC(32점)와의 최종전에서 이기면 K리그1 잔류를 확정짓는다. 유 감독은 리그 잔류가 가장 큰 소원이라고 했다.
인천=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