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게임으로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가상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순이’가 1945년 인도네시아에 있는 수용소로 시간여행을 떠나 동료들을 구하는 내용이다. 게임에 친숙한 젊은 세대가 위안부 실상을 제대로 알기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가슴 아픈 역사를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는 도대체 왜 위안부 게임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체험형 콘텐츠 제작 업체 겜브릿지의 도민석 대표를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도 대표는 “부정적 시선이 있다는 걸 잘 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가 스무명 남짓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분들이 살아 계실 때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게임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심은 했지만 첫발을 떼기는 쉽지 않았다. 도 대표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28년째 수요집회를 해온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부터 찾았다. 윤 이사장은 미래세대가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고, 게임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데 공감했다고 한다. 정의기억연대 역시 위안부 문제를 알릴 새로운 창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양측이 의기투합해 본격적으로 팀을 꾸리고 고증 작업에 들어간 게 지난 3월이다. 게임 이름 ‘더 웬즈데이’는 수요집회에서 따왔다.
순이가 과거로 돌아가 일본군 기밀문서를 찾고, 동료들을 구출시키는 게임 콘셉트는 올해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 할머니가 생전 ‘같이 있던 동료들을 구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던 말이 귀에 꽂혔다. 도 대표는 “게임에서나마 할머니가 과거로 돌아가 친구들을 구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사용자들은 게임을 통해 할머니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 배경을 인도네시아로 정한 건 위안부 문제가 글로벌 인권범죄라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도 대표는 “위안부 사료를 찾아보면서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 위안부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번역과 현지화 작업을 거쳐 이 게임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도 대표는 게임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용자가 주인공이 되어 직접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어서다. 그는 “지금의 10, 20세대는 어려서부터 유튜브를 접하고 게임 방송을 보며 자랐다”며 “그들에게 친숙한 매체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인 시점에서 전쟁 참상을 깨닫게 하는 폴란드의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게임으로 평가받는다”며 “외국에선 게임으로 사회 문제를 알리는 시도를 이미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 대표는 현실적인 고민도 털어놨다. 도 대표는 “게임 주소비층 가운데 의견이 다른 분들도 있을 것”이라며 “주변에선 인신공격이나 고소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도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게임 출시를 위한 펀딩을 시작했다. 2주 만에 190명이 참여해 5000만원이 모였다. 그는 “수익이 생기면 절반은 정의기억연대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한 도 대표는 네팔 지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 ‘애프터 데이즈’를 만들었고, 수익금 일부를 네팔에 기부했다.
글·사진=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