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보 균열 막은 지소미아 종료 유예

입력 2019-11-23 04:01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가 22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지소미아 종료 시점인 23일 0시를 불과 6시간 앞두고 조건부로 종료 시한을 미루는 안을 내놓았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효력을 정지시키겠다고 일본 측에 전달했고 일본 정부도 이해를 표시했다. 정부는 또 일본과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경제보복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지소미아 종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으나 파국을 막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위해 바람직한 결정이다. 언제든지 지소미아를 종료시킬 수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NSC 회의 직후 후속 협의를 위해 일본으로 출발했다. 진지한 협상을 통해 지소미아가 완전히 복원되고 한·일관계도 정상화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 등으로 인해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바뀔 때가 됐다.

이번 지소미아 파동은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익을 위한 실리 외교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동맹 관계를 새롭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도 최근 국무부 청사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들과 만나 “한·미동맹 리뉴얼(갱신)”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기존 한·미동맹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동맹은 호혜적 관계를 기반으로 공동 이익을 위한 상호 존중과 협력의 길로 가야 한다. 일방적인 요구와 압박은 동맹 정신에도 맞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는 한편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면서 지소미아 카드를 사용했지만 미국은 중재 노력보다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여기에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까지 겹쳤다.

그동안 안보 문제와 관련한 논란도 많았다. 정부 여당은 지소미아가 군사적 효용 가치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한·미·일 안보공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이게 없으면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고 있는 만큼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이번 지소미아 파동은 한·미·일의 안보협력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