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 해도 모자랄 판에”… 북, 문 대통령 친서 공개적 면박

입력 2019-11-22 04:05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5일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낸 사실을 공개하며 참석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남측의 기대와 성의는 고맙지만 김 위원장이 부산에 가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1일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 5일 김 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문 대통령 모친 별세에 즈음한 김 위원장의 조문에 대해 지난 5일 답신을 보냈다”며 “이 서한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이 참석할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의 공동 노력을 국제사회의 지지로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아세안 10개국 정상과 자리를 같이하는 쉽지 않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참석이 어렵다면 특사라도 보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통신은 “현 북남(남북) 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계기점과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의 친서가 온 후에도 몇 차례나 위원장께서 못 오신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을 보내온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의 불참 이유로 남측의 외세 의존 정책을 들었다. 그러면서 “삼고초려를 해도 모자랄 판” 등의 원색적인 언어로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데 기사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통신은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에서 한 약속이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는 지금의 시점에 형식뿐인 북남 수뇌 상봉(정상회담)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이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불참 통보를 명분으로 우리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친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외교적 관례인데, 관영 매체를 통해 알리는 ‘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겉으로는 수위를 조절한 듯한 거절로 보이지만 단순한 불참 통보가 아니라고 본다. 불참 통보라면 친서로 하든 다른 방법도 많았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가진 불만과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히 나빠져 김 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이 사실상 없었는데도 정부가 초청 친서까지 보낸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참석할 가능성이 0%인데 초청장을 보내면 수락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티븐 비건(오른쪽)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20일(현지시간)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건 지명자는 “(나의) 승진이 대북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북한에서 나와 협상해야 할 사람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이날 최 부상이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면담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창은 열려 있다”며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에서 나와 협상해야 할 사람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라며 “최 부상은 김 위원장의 신임을 얻고 있고, 권한이 주어진 협상가라고 믿는다”고 했다.

손재호 임성수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