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 시작도 끝도 단식… 대화·타협커녕 ‘反정치’ 얼룩

입력 2019-11-22 04:06
강기정(왼쪽) 청와대 정무수석이 21일 청와대 앞에서 이틀째 단식투쟁 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찾아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절차의 시작과 끝이 당대표들의 단식으로 얼룩졌다. 대화와 타협으로 쟁점 법안을 논의하라는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무색해졌고, 극단적 투쟁만이 남았다. 정치권은 자성 없이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을 조롱하는 데 급급했다.

패스트트랙이 포함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국회에서 쟁점 안건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안건을 심의하며, 소수 의견이 개진될 기회를 보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 대화와 타협은 없고 일방적 주장을 단식으로 관철하는 모습만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반(反)정치가 일상화됐다’는 자조가 흘러나온다.

지난해 12월 6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했다. 결국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고, 2019년 1월까지 선거제 관련 법안을 합의 처리한다’고 합의했고, 열흘 만에 두 대표의 단식은 중단됐다. 하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단식 중단을 위한 미봉책 성격의 합의라 여야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급기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4월 국회 의안과를 점거하고 회의장 출입을 막는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은 여전히 여야 입장 차가 크다.

단식 이틀째를 맞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21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단식투쟁을 이어가겠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은 3대 정치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고 위기에 빠트린다면 제1야당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은 저항하고 싸우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전날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다가 경호 규정 탓에 밤늦게 국회로 이동했고, 이날 새벽에 다시 청와대 앞으로 왔다.

여야는 황 대표의 단식을 깎아내렸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황 대표가 단식 전날 맞았다는 영양제 소식과 국회 경내에 든든하게 쳐진 농성 천막, 두꺼운 침구, 황 대표 좌우를 둘러싼 전기난로를 보면 허탈할 따름”이라며 “황제 단식이라고 조롱까지 사며 정작 민생과 국민에는 등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단식했던 이정미 의원도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수가 결단할 때는 명분과 실리가 있어야 하는데 황 대표의 단식은 두 가지 다 찾을 수 없다”며 “(과거 자신의 단식은) 지금 황 대표 단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한 정의당 심상정·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황 대표는 불참했다. 권현구 기자

국회에서는 패스트트랙 법안 논의를 위한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 간 3차 정치협상회의가 열렸지만 황 대표는 단식을 이유로 불참했다. 여야 4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회동을 마쳤다. 한민수 국회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에 대해서는 실무 대표자 회의에서 구체적인 합의안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의원 정수 문제를 성역시하면 안 된다고 야3당이 주장했다”며 “패스트트랙 처리 시한이 다가오기 때문에 한국당 입장이 완강하면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안이라도 만들어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심희정 신재희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