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한 ‘대가성(quid pro quo)’이 있었다고 밝혔다. 주인공은 오랜 공화당 지지자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고든 선덜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대사다. 그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관련 업무를 했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정부 핵심 관계자들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진술 중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만 짜깁기해 결백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선덜랜드 대사는 20일(현지시간)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개최한 공개청문회에서 “정보위원들이 복잡한 사안을 간단한 질문 형태로 압축해 왔다는 걸 안다. 통화·면담과 관련해 대가가 있었는지 말이다”라며 “내 답변은 예스(Yes)다”라고 말했다.
선덜랜드 대사는 우크라이나 사건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루돌프 줄리아니와 일했다고 밝혔다. 줄리아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로 이번 스캔들의 핵심 인물이다. 선덜랜드 대사는 “나와 릭 페리 에너지 장관, 커트 볼커 전 국무부 우크라이나 협상대표는 대통령의 분명한 지시에 따라 줄리아니와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줄리아니는 미국 대통령의 욕구를 표현했고 우리는 이 수사가 대통령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도 했다.
선덜랜드 대사는 이번 스캔들과 관련해 “모든 사람이 일원(in the loop)이었다. 그것은 비밀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미 행정부 2인자로 꼽히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 특히 그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도 지난 9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지연이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와 연계된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고, 펜스 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했다.
선덜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정적에 대한 수사와 연결했다고 믿는다고 증언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에서 “나는 (군사원조에 대한)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올바른 것을 하라고 얘기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선덜랜드 대사는 절대적으로 ‘조건부’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근거로 결백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젤렌스키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말하라.’ 이게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민주당)은 이제 끝내야 한다. 대가는 없었다. 대통령은 결코 잘못한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해석과 달리 선덜랜드 대사의 증언 대부분은 대가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 지지자인 데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해 핵심 측근으로 분류돼 왔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그의 증언이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민주당 소속 애덤 시프 미 하원 정보위원장은 선덜랜드의 증언에 대해 “탄핵조사에서 중대한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공화당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증인은 없다고 주장해 왔는데 선덜랜드 대사의 증언이 이런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