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아버지 사고 앞에 흔들린 신앙… ‘부활은 역사다’ 진실 앞에 굴복

입력 2019-11-25 00:08

일곱 살 때 포도넝쿨이 덮인 넓은 마당이 있는 큰 시골집을 떠나 가게에 방 한 칸뿐인 서울로 이사했다. 시간이 지나 전세를 낀 좀 큰 집을 샀지만 경제는 점점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다시 대출받아 3층짜리 새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늘어난 부채에 결국 3년 만에 집을 팔고 말았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위암에 걸려 수술했고 집안은 거의 주저앉았다. 나 혼자 직장생활을 하며 집안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너무 벅찼다. 2개의 카드를 돌려 막아가며 현금서비스를 받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써도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10년 정도 지나 빚은 거의 해결됐지만 미혼에 30대 중반을 넘긴 내게 남은 것은 마이너스 통장 하나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가 골절됐다. 800만원의 수술비에 앞이 캄캄해지자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어렵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십일조와 온갖 헌금은 물론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성전꽃꽂이에 교회 재정도 맡아 온전히 교회에 봉사했는데 눈앞의 상황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지도 의심이 들었다.

성경도 믿을 수 없었다. 특히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를 낳고 죽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오랜 확신과 믿음은 아버지의 사고 앞에서 그대로 흔들린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사는데 왜 믿는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이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드린 내 시간, 내 물질, 내 삶이 억울할 것 같아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반드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친구와 춘천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한마음교회 성도분의 신앙 간증을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던 내 귀에 ‘부활은 역사다’라는 한마디가 강하게 꽂혔다. 내가 가장 믿을 수 없던 부활이 역사라는 말이 너무 충격이었다. 순간 ‘부활이 역사면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것이잖아’라는 생각이 들며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고민이 단숨에 날아갔다. 사도행전 17장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말씀에 또 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 신화적 존재 같던 예수님은 실제로 이 땅에 사셨던 역사적 인물이 분명했다.

부활이 실제가 되며 나는 바로 예수님 앞에 섰다.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의 역사였다.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죄 없는 그분이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는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찢어졌다. 확실한 증거를 주셨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나는 마귀보다 더 악랄한, 지옥 갈 죄인이었음이 알아지자 하나님 앞에 그 죄를 통회하고 나의 주인으로 고백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니 어려움은 여전해도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몇 년 전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때도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니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가장 먼저 직장의 앞자리 여직원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했다. 자신은 교회가 맞지 않는다고 절에 나갔었는데 복음을 받고 동료는 물론 가족, 친구들에게 나보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직원은 내게 교회에도 영업부가 있냐는 말도 했다.

지난 해 9월 운동을 하다가 발 뼈가 골절돼 하반신 마취를 하고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수술 도중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과 과장님께 복음을 전했고 부활만 얘기한다며 나를 타박하던 두 여동생은 지금 작은 교회를 세운 동역자가 됐고 막내 여동생은 어린이집 엄마들에게 복음을 전해 또 다른 작은 교회를 세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자유케 하는 복음의 능력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멈추지 않고 복음을 들고 기쁘게 달려간다.

장혜진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