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하나님 만나는 방법만 찾다 회개하고 복음에 젊음 바쳐

입력 2019-11-25 00:09

인도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는데 함께 갔다 온 친구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친구가 방언을? 왜 같이 갔다 왔는데 친구만?’ 방언은 하나님과 독대라고 생각하며 사모하던 나도, 친구처럼 하나님을 꼭 만나고 싶어 모든 집회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어느 신앙 세미나에서 밤새 기도하면 방언을 주신다는 목사님 말씀에 독한 마음을 품고 기도했다. 힘든 몸을 버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날 밤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다른 집회에서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모세가 그랬듯 신발을 벗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하나님께 복종하십시오.” 하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했다. 너무 팔이 아파 내리는데 “이게 여러분들 믿음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여기까지입니까? 십자가의 고통만큼 아픕니까?” 팔을 비비 꼬며 버텼지만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다 고3 때 로마서를 영어로 외우면 하나님이 만나주실 것 같아 암기를 시작했다. 7개월이 돼 1장 1절부터 16장 마지막 절까지 다 외워 걸어 다니는 로마서가 됐지만 또 아무 일도 없었다.

대학에 와서 한마음교회에 연결이 됐다. 교회 언니들과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왜 나는 저런 확신과 기쁨이 없을까?’ 고민이 됐다. 부활은 나도 잘 아니까 하나님 만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언니들은 계속 예수님의 부활을 반복해 얘기했다. 답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방학을 계기로 교회를 떠나 내 방법대로 하나님을 찾으며 다시 유명 집회를 찾아다니며 부르짖었지만 내 신앙은 역시 거기까지였다. 어느 날 확신에 찬 교회 분들과 언니들이 생각 나 ‘설마 지금도 부활?’ 하며 돌아갔다. 그런데 여전히 부활이었고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목사님께선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하셨다. ‘증거? 기독교에 증거라는 게 있나? 그냥 믿는 게 아닌가?’ 귀가 번쩍 뜨였다. 그때 사도행전 17장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말씀에 지금 내가 보는 게 성경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그래, 부활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지. 그렇다고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니잖아?’ 역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과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6장 9절의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라며 바로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다. 부활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풀지도 못했는데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니 마음이 폭발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게 말이 돼? 로마서까지 다 외우며 열심히 했는데 내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하시는 거야?’ 나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러다 에스겔 28장 2절 말씀 앞에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내 마음이 교만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의 신앙생활엔 나밖에 없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준과 행위만이 있었다.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바로 무릎이 꿇어졌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음을 알게 되자 그대로 회개가 됐다. 그리고 바로 그 악랄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벅차오르는 감격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정신없이 집 주위를 뛰며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고 외쳤다. 깊은 늪에서 빠져 나오니까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강하게 버티던 친한 어느 언니가 부활의 복음을 받았을 때는 눈물만 났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오늘도 놓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젊음을 모두 주님께 드리는게 내겐 가장 큰 기쁨이고 유일한 소망이다. 세상을 위해 바치는 젊음이 아닌 주인 되신 예수님께 모든 젊음을 드리리라 다짐해본다.

이은혜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