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비싼 옷을 입고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자랐다. 그러나 그런 생활은 일곱 살 때 동생이 태어나면서 막을 내렸다. 엄마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 우리들은 조선족 아주머니 손에서 자랐다.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무척 귀여웠지만 부모님 맞벌이로 할머니 댁에서 자란 나보다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훨씬 더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은 너무 속상했다.
엄마 냄새가 배어있는 베개를 껴안고 위안을 삼았고 화이트보드에 ‘엄마, 힘내세요. 사랑해요.’ 등을 써 놓으며 관심을 받으려 했다. 사업을 그만둬 엄마랑 매일 같이 있겠다는 기대와 달리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 힘들어졌다. 동작이 느리고 툭하면 물건을 잃어버렸던 내게 유난히 잔소리를 많이 했다. 내 공부나 피아노를 가르칠 때는 더욱 목소리가 높아졌고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도 나도 지쳐 피아노의 꿈도 한 달이 못돼 산산조각 났고 나는 어느 새 엄마의 눈치를 보았고 엄마의 성격은 자주 폭발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엄마, 나 주워왔지? 어떻게 내 아기 수첩이 없어 나를 임신한 사진도 없잖아. 그리고 엄마도 아빠도 안 닮았잖아” 하며 반항했다. 나는 점점 모든 행동에 자신감을 잃어갔고 시선은 늘 땅을 향해 있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나는 대학에 입학해 신앙 훈련을 받겠다는 각오로 한마음교회 기숙사로 들어갔다. 언니들과 말씀교제를 하며 간절하게 엎드릴 때 한마음교회에서 발행한 소책자를 읽었다. 마태복음 7장에 ‘입술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의 이야기에 ‘이들은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마음에 자기가 주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며 불법을 행했다고 하신 것이다’고 설명돼 있었다. 내 시선이 딱 멈췄다. 내가 바로 입술로 주여 주여 하는 자였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앙들, 방언으로 기도하고 간증을 기록하고 찬양했던 모든 것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입술로는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고백했지만 마음 중심에는 나를 드러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교회를 다니며 사실이라 하니까, 역사책에 기록돼 있다고 하니까 아무 고민 없이 ‘그렇지, 예수님 부활하셨지’ 하고 있었는데 부활을 본 제자들 앞에 처음으로 서게 됐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어찌할꼬!’ 하며 회개했던 것처럼 나도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제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라고 입술로는 고백했지만 정작 제 마음의 주인은 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돼 인정받고 싶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했습니다. 이제 진정한 저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이렇게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니 드디어 교회공동체가 보였다. 복음으로 하나 된 공동체는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서로 부족한 모습을 품고 채워주는게 인지됐다. 그러다 어느 예배 때 엄마의 간증을 들었다. 맞벌이를 해 엄마의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라며 그런 내게 너무 미안했다는 내용의 고백을 했다. 그 순간 나를 향한 엄마의 진심이 전해지며 그동안 원망했던 마음이 한 순간에 풀어졌다. 상처도 많고 패인 흉터도 많았던 내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 넘쳤다. ‘예수님, 이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다.
지금 나는 언니들과 새벽을 깨우고 노방전도를 나간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눌리고 자신감 없는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주님과 동행하며 자신감과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의 삶도 부활하셔서 나의 주인이 돼 주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다.
류지민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