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압박 美 ‘주한미군 감축’ 레드라인 넘을까

입력 2019-11-21 04:02
경기도 동두천의 미군기지 캠프 케이시에 20일 주한미군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전날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한국과 충돌해온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는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실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거론한다면 한·미 동맹 체제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현재까지 전혀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9일 필리핀 방문 중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와 관련해 “나는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에 대해 예측이나 추측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인하지 않고 여지를 남겨 놓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에스퍼 장관이 가정적 상황에 답하지 않겠다는 의례적 답변을 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실제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분석 등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에스퍼 장관의 발언이 나오기 전 서울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3차 회의는 한·미 간 이견으로 합의가 불발됐다. 향후 SMA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을 더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만큼의 방위비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큰 관심을 가진 만큼 미 정부 당국자들도 총력전을 펼치면서 ‘벼랑끝 전술’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큰 액수를 불렀는데, 미치지 못할 경우에 주한미군을 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당장 감축은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인 주한미군 조정이나 상징적으로 1개 대대 정도 감축은 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현재 2만8500명 수준으로 알려진 주한미군 감축은 미국의 안보이익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SMA 협상에서 미국이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상력 제고를 위한 ‘블러핑(엄포)’ 차원에서 언급은 할 수 있어도,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실제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또 미국 의회 및 싱크탱크 등 워싱턴 조야에서도 안보이익을 침해하는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주한미군을 빼기는 쉬워도 다시 집어넣기는 정말 어렵다”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주한미군이 핵심 포인트이고, 주일미군만을 갖고 전략을 짜기는 어렵고 때문에 미국은 절대 감축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등 돈 문제로 주한미군을 감축한다면 동맹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깨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실행은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이 동맹국들에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돈 문제와 감축을 엮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비공개로 미국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은 지난 18일 미국을 방문해 미국 백악관 등 외교·안보 담당 고위 인사들을 만나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하고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귀국한 김 차장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미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이상헌 손재호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