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역대 최장수 총리로 등극한 20일 시민단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최근 불거진 정부 주최 행사인 ‘벚꽃 모임’의 사유화 논란이 정치공방 차원을 넘어 검찰 수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재임일수 2887일을 기록해 가쓰라 다로(1848∼1913) 전 총리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넘어섰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남은 임기 동안 초심을 잊지 않고 정책 과제에 임하겠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전히 개헌에 대한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는 임기 동안 과제로 디플레이션 탈출, 저출산 및 고령화 해결, 전후외교 총결산, 헌법 개정을 꼽았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에 출석해 벚꽃 모임에 대해 집중 추궁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가 매년 봄 정부 주최 행사인 벚꽃 모임을 개인 후원회 친목행사로 만들었다는 사유화 논란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벚꽃 모임에 대해 그동안 아베 총리는 초청 대상자 선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아베 총리 사무소에서 후원회원들에게 보낸 벚꽃 모임 행사 안내문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이 드러났다. 부인 아키에 여사도 개인적으로 초청 대상자 선정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야마구치현 자민당 계열 지자체 의원들이 아베 총리 사무소 명의의 신청서를 이용해 지지자들을 벚꽃 모임에 참여토록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초청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벚꽃 모임 전날 도쿄 고급호텔에서 열린 만찬을 자신의 후원회가 주최한 것도 인정했다. 호텔 만찬 참가비는 5000엔으로 돼 있지만 최소 비용이 1만1000엔이어서 아베 총리 측이 향응을 제공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초청자의 최종 결정은 내각 관방이 했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만찬 비용은 참석자 각자가 냈다”며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야당의 요구에 올해 초청 인사 1만5000여명의 내역을 밝혔다. 초청자는 각 부처 추천 6000명, 자민당 추천 6000명, 아베 총리 추천 1000명, 부총리 및 관방장관 추천 1000명, 문화예술계 특별 초청자·언론 관계자·공명당 관계자 1000명이었다.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가 추천한 인사 1000여명에 아키에 여사의 추천까지 포함돼 있고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도통신은 전날 자민당이 지난 4월 벚꽃 모임을 7월에 예정돼 있던 참의원 선거에 활용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세금이 들어가는 공적 행사가 특정 정당의 사전 선거운동으로 이용됐다는 의미여서 아베 총리 개인은 물론 자민당 차원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한편 아베 총리의 최장수 재임 기록에 대해 자민당에서는 축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반면 야권과 언론에서는 “아베 내각은 사상 최악의 내각”이라거나 “(아베 총리의) 독선적인 방식이 정치로부터 조심성과 염치를 빼앗았다”고 비판하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