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청률 2위, 화제성 1위, 비평가들의 호평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강력한 올해의 드라마 후보 ‘동백꽃 필 무렵’이 오늘(21일) 막을 내린다. 흥행 일등공신은 차진 충청도 사투리의 ‘촌므파탈’ 직진남 황용식(강하늘)이지만, 이 드라마의 매력은 매회 울리고 웃기는 감동의 주인공이 바뀐다는 점이다. 하루는 “시궁창에서 깨금발 들고 아득바득 유학생 동생 부양하는” 짠한 향미(손담비)였다가, 또 하루는 “내 자식한테 해 끼칠 놈은 백 리 밖에서도 알아본다”는 동백이 엄마 정숙(이정은), 다른 한 회에는 미혼모 엄마의 연애 때문에 “가장 머리 아픈 여덟 살”이라는 ‘애어른’ 필구(김강훈)였다. 그리고 지난주의 주역은, 옹산 어벤져스 ‘옹벤져스’ 아줌니들이었다.
‘옹벤져스’는 드라마의 배경인 시골마을 옹산 게장골목 상인 번영회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옹산의 심장을 이고 가는 사람들’이라며, 일명 ‘옹심이’라 부른다. 한때는 텃세를 부리며 외지인이던 주인공 동백이(공효진)를 핍박하더니, 연쇄 살인범 까불이가 동백이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소식에 비장하게 떨치고 일어선다. “아무래도 말여, 동백이는 그냥 죽게 냅두면 안 되것어.” “아주 같잖은 놈 하나가 옹산을 깐히 보고 까부는데, 쭉정이 하나 뽑아 버리고 말자고!”
살인마를 ‘같잖은 놈’이라고 대차게 부르는 이 여장부들은 그날로 당번을 정해 동백이를 살피는 보초를 서고, 촌티 풀풀 나는 색색이 추리닝을 차려입고 몰려나와 골목을 지킨다. 투박하고 드세지만 사람냄새 나는 이들이 범인에게 맞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조석으로 6년을 안면 트고 살았으면 식구지!”
이웃사촌도 아니고 ‘식구’, 가족 같은 이웃이라는 이 말.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에, 좋은 이웃이란 밤늦게 세탁기를 돌리지 않고 아이들 뛰는 소리나 애완견 짖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는, 층간 소음 내지 않고 되도록 마주칠 일 없게 하는 이웃 아니던가. 하지만 ‘성공한 대중문화 서사는 본질적으로 대중의 욕망이 투사된, 대중의 평균적 의식과 감성에 호소하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했다(김영찬, ‘문학이 하는 일’). 그러고 보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도 쌍문동 봉황당 골목길 이웃들이 유사가족으로 정을 나누는 아날로그적 공동체를 그려 인기를 얻었다. 그렇다면 옹벤져스가 구현한 현실에는 없는 ‘가족 같은 이웃’이라는 판타지 역시, 그런 따뜻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을 제대로 투영했다는 뜻이겠다.
연말이면 다음 해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2012년부터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를 내고 있는 김용섭 경영전략 컨설턴트는 2020년의 키워드로 ‘느슨한 연대(Weak Ties)’를 꼽았다. 전통적인 결혼관, 회식으로 대표되는 직장문화 등 기존 대인관계가 주는 부담을 덜어내려는 젊은 세대의 태도라고 규정했다. 이기적이라며 혀를 찰 윗세대도 있겠지만, 또 다른 책 ‘2020 트렌드 모니터’는 이 또한 젊은층의 외로움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SNS로 페친(페이스북 친구) 트친(트위터 친구) 인친(인스타그램 친구)과 연결돼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 때문에 다시 실친(실제 만나는 친구)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태도’라고도 평했다.
느슨한 연대는 외롭지 않으면서 질척이지 않고, 멀지 않지만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의 매력’을 설파한다. 그런데 적당한 거리감뿐이었다면 동백이가 옹벤져스에게 감격해 “저요, 옹산에서 100살까지 살래요”라며 펑펑 울 일도, 시청자들이 화면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옹벤져스는 때로는 인생에 이렇게 훅 들어와도 괜찮은, 대가 없이 나누고 염려하며 보살피는 착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행복한 판타지를 선사했다. 옹벤져스 아줌니들, 보고 싶을 거예요.
권혜숙 문화부장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