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전북 익산시청 회의실. 정헌율 시장과 국·실·과장들은 간부회의에 앞서 묵념을 했다. 비료공장 유해물질로 인해 숨진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암 발병 사태의 인과관계가 명백히 밝혀진 이 시점에서 우리는 처절한 반성과 함께 재발방지에 대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도 지난 15일 “장점마을의 집단 암 발병에 대해 상급기관으로서의 관리 소홀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공식 사과하고 “피해 보상과 환경 개선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4일 환경부 발표로 익산 장점마을 비극의 원인이 밝혀진 이후 해당 지자체들의 반성과 사과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주민들의 피해 호소와 항의를 계속 묵살해 왔거나 오히려 우수환경상(전북도)까지 준 행태를 되돌아보면 백번 사죄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피해자 숫자를 일부러 축소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14일 장점마을 집단 암 발생의 역학적 관련성을 밝히며 이로 인해 2017년 12월말까지 주민 99명 중 22명이 암에 걸려 이 중 14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18년 1월 1일 이후 발병한 사람과 인근 마을 피해자, 공장 직원들은 집계에서 제외해 신뢰를 잃고 있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해 7월 역학조사 중간보고회에서 당초 주민들을 배제하기로 해 비난을 샀다.
장점마을주민대책위원회는 마을내 전체 암 환자는 모두 33명이고, 인근 마을과 직원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60명 정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익산시도 인근 왈인마을에서 6명, 장고재마을에서 3명이 암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역학조사 결과 발표 뒤 해당 기관들은 뒤늦었지만 대응책 마련에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익산시는 장점마을 주민 1명씩 관리카드를 만들어 밀착 지원하는 한편 인근 마을의 사후 관리에도 나서기로 했다. 전북도도 법률 자문 지원과 비료공장 부지의 친환경 활용 방안 지원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는 익산시와 협의해 사후관리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피해 구제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 누구도 진정한 피해 배상에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공장은 이미 문을 닫았고, 그 공장 사장도 사망해 피해 배상의 길이 막막한 실정이다. 게다가 연초박을 비료공장에 넘긴 KT&G는 적법 매각했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민들은 행정당국과 함께 KT&G를 상대로 조만간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최재철 주민대책위원장은 19일 통화에서 “행정관청의 뒷북 행정에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비료공장과 가까운 5개 마을 정도는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며 “KT&G는 지금이라도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