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사즉생(死則生·죽어야 산다) 수준의 쇄신 요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황교안 대표는 총선 후에 평가를 받겠다고 대응했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부진한 인적 쇄신과 보수통합 작업에 소속 의원들이 당 해체까지 거론하며 경고음을 울렸음에도 ‘마이웨이’를 택한 것이다. 황 대표는 현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카드를 꺼내들었다. 잇따른 내부 비판에 맞서 문재인정부라는 외부의 적을 부각시키는 모양새다. 파격적인 쇄신 없이 반문재인 정서에 기대는 모습만 보여줄 경우 황 대표의 리더십 위기가 심각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황 대표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쇄신은 국민적 요구이고, 반드시 이뤄내야 할 시대적 소명”이라며 “쇄신 방안에 대해 숙고하면서 폭넓게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감한 쇄신으로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진력하겠다”며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저부터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강조했다. 전날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며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당 해체를 요구한 데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총선 전 사퇴는 없다고 못 박은 황 대표는 대신 당내 위기감을 의식한 듯 평소보다 강한 어조로 정부를 비판했다. ‘역사적 위기’ ‘퍼펙트 스톰’ ‘비상시국’ 등의 표현을 수차례 언급하며 위기 상황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위기 상황 극복을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한다”며 “곧바로 회답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세 번째인 황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두고 비판적 시선도 적지 않다. 영수회담은 보통 여야 간 경색 국면 타개를 위한 정치적 담판으로 이뤄지는데,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게다가 청와대는 제1야당 대표와의 일대일 회담보다 5당 대표가 참여하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통해 국회와 소통하겠다는 입장이다. 황 대표와 청와대가 회담 방식을 두고 기 싸움을 벌이다 수차례 대화가 무산된 전례도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내부 저항에 직면한 황 대표가 ‘시선 돌리기용’으로 영수회담 카드를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황 대표의 제안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황 대표로부터 영수회담 제안을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한국당 내에서는 황 대표의 대응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주호영 의원은 CBS라디오에 출연해 “황 대표가 이끄는 지도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것이냐, 말 것이냐에 관해서는 서로 간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황 대표가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을 비울 생각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결국 황 대표의 결단에 달린 것”이리고 말했다. 수도권 중진인 김용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세연 의원이 오죽하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과감한 쇄신을 요구했겠느냐. 저는 당에 도움이 되면 불출마든 험지 출마든 수용할 의지가 있다”면서 “황 대표가 정기국회 마무리를 앞두고 있어서 당장 인적 혁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원칙이나 방향을 빨리 얘기해야 한다. 강세 지역을 물갈이하겠다는 시그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심우삼 심희정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