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이란서… 기름값 50원 인상에 민심 폭발

입력 2019-11-19 04:07
이란 반정부 시위대가 16일(현지시간) 중부도시 이스파한에서 열린 시위 도중 불타는 오토바이 주위에 모여 있다. 이란 정부가 전날 ℓ당 휘발유 가격을 약 50원 인상하자 민생고에 시달리던 이란 시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AFP연합뉴스

칠레에 이어 이란에서도 ‘50원 인상’이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이란 정부는 민생고로 인한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AP통신과 BBC방송 등은 17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레란과 이스파한 등 주요 도시 10여곳에서 지난 15~16일 이틀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가 지난 15일 휘발유 가격을 50%(약 50원) 인상하는 조치를 기습 발표하자 민생고를 견디다 못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민생고에 시달리던 칠레 시민들이 정부의 지하철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 발표에 분노해 한 달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과 유사하다. 세계 석유매장량 4위로 중동의 대표 산유국인 이란에서 석유제품 때문에 시위가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분노한 시위대는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주유소를 파괴했다. 이란 IRNA통신은 테헤란 남동쪽에 위치한 시르잔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총격전을 벌이다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란 정보부는 이틀간 이란 전역에서 은행 100곳과 상점 57곳이 시위대의 방화로 소실됐다고 밝혔다.

이란 정보부는 총 8만74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고 이란 경찰은 이들 중 1000여명을 폭력 행위와 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체포했다.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16일 밤부터는 인터넷도 전면 차단됐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국영방송 연설을 통해 이번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했다. 하메네이는 “국민은 정부에 요구사항을 말할 수 있다”면서도 “관공서와 은행에 불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폭도들이나 하는 불안 조성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란과 적대 관계에 있는 미국은 반정부 시위에 지지 의사를 표했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란 국민의 평화적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다”며 “시위대에 가해진 치명적인 폭력과 심각한 통신 제한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정부와 체결한 핵합의를 지난해 일방적으로 파기한 뒤 대(對)이란 경제제재가 부활하면서 이란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정 압박에 시달리던 이란 정부는 빈곤층을 위해 지원하던 휘발유 보조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했고, 이로 인해 ℓ당 1만 리알(약 100원)이던 휘발유 가격은 1만5000리알(약 150원)로 50원가량 올랐다. AFP통신은 “이번 휘발유 가격 인상은 이란 소비자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