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과 맞장 떴던 박충식 “대학야구 부활 기여하겠다”

입력 2019-11-18 04:06
박충식 사이버한국외대 감독이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며 대학야구의 중흥을 다짐하고 있다. 박 감독은 지난 8월 새롭게 창단된 사이버외대 감독으로 취임해 내년부터 대학야구리그에 참가할 예정이다. 윤성호 기자

1993년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만 해도 해태의 붉은 유니폼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날 해태의 문희수 선동열 송유석이라는 난공불락 투수들과 홀로 맞장을 뜬 선수가 바로 삼성의 투수 박충식(49)이었다. 무려 15이닝 181구를 던지는 투혼을 선보였지만 2대 2 무승부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이 경기 혹사로 박충식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만한 피칭을 한 당시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는 이제 열정 가득한 아마추어 선수들의 지도자로 새출발을 하게 됐다. 은퇴 뒤 프로야구 선수협 사무총장, 호주프로야구 질롱 코리아 단장 등을 거친 박 감독은 지난 8월 창단된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사이버외대)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한 뒤 내년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우여곡절 많지만 야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헌신적인 박 감독을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뜻하지 않게 대학야구를 맡게 된 것은 그의 고민과 주위의 관심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야구를 지켜보면서 못내 아쉬운 것은 좋은 선수들이 생각보다 일찍 운동을 그만둔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에 지명되지 못했지만 충분히 기량이 괜찮은 선수들이 많은데 고등학생 때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더라구요. 대학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폭발시킬수 있는데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차에 김중렬 사이버외대 총장의 연락을 받고 고민하다 감독직을 수락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33번째 대학야구팀이 된 사이버외대 야구부는 경기도 이천 팀업캠퍼스를 훈련장으로 쓰며 내년부터 대학야구리그에 참가할 예정이다. 사이버외대팀의 장점으로 박 감독은 ‘공부할 수 있는 엘리트야구 환경’을 들었다. 그는 “대학 특성상 강의가 원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의외로 훈련할 시간이 많다”며 “영어, 일어 등을 전공으로 선택해 외국어 공부를 쉽게 할 수 있어 선수로서 뿐 아니라 다양한 진로 탐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생팀 감독인 만큼 요새 발품을 많이 팔고 있다. 박 감독은 “전국을 오가며 선수, 감독들을 만나고 있다”며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열정있는 선수들을 영입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곧바로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리그에 잘 연착륙해 선수들을 잘 키워보겠다”고 다짐했다.

침체된 대학야구 발전에 대한 고민도 많다. 지난달 고교·대학선수들이 출전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수 아래 중국에 두 차례나 패하고 4위에 머문 것은 한국 대학야구의 현실을 보여줬다. 박 감독이 바라는 것은 ‘얼리드래프트(졸업 이전의 학생도 참가할 수 있는 드래프트)’ 도입이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에서는 시행 중인 제도다. 박 감독은 “현재 대학 2, 3학년 때 잘하다 4학년 때만 잘 못해도 손해가 큰 상황”이라며 “몇 학년 때든 프로에 지명될 수 있다면 본인의 자각도 남다르기에 야구계에서 얼리드래프트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프로야구 선수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싸운 스타 박충식은 이제 아마야구로 눈높이를 낮췄지만 한국 야구에 더 크게 기여할 길이라며 기뻐하고 있다. “아마추어 지도자는 처음입니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기량 향상 및 인성 함양을 시키면서 대학야구 부활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