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1㎞ 내 아무도 살지 않고 물도 전기도 가스도 길도 없는 무인도 같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홀로 보냈다. 같이 놀 사람도 놀 거리도 없어 혼자 터득한 노는 방법이 공상이었다. 그런데 이 공상이 결국 나를 혼미와 복잡으로 몰아갔다. 만화책을 볼 때 주인공을 상상하며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슈퍼 히어로가 됐고 적의 주먹에도 손가락 하나로 ‘탁탁’ 쳐내는 등 모든 삶은 공상으로 이어졌다. 공상노트에 스포츠, 자동차, 동물, 삼국지, 만화캐릭터 등을 그려놓고 입맛에 맞게 24시간 365일 공상했고 공상 속에 잠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스토리를 짜며 공상했는데 나중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걷잡을 수 없는 생각에 빨려들었다. 생각은 꼬리를 물며 복잡해졌고 결국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만의 세계에 갇혔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마음교회 기숙사에 들어갔다. 개념 없고 나밖에 몰랐지만 형들은 친절하게 모든 것을 도와주며 복음을 들려주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증거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라 했지만 머리는 더욱 복잡해지기만 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네 감정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야!” 하면 “느낌이 안 오는데 어떻게 믿어요?” 했다. 복음은 들을수록 혼미해졌고 두통까지 몰려왔다. 말도 막 나가서 선배의 어머니를 “아, 느네 엄마가 그러셨어요?”라고 해 ‘느네 엄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조금 좋아지다가도 ‘부활이 역사라는데 역사가 거짓이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에 무너지기를 4년간 반복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교회에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인생을 걸고 엎드렸다. 어느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 시선을 완전히 돌려주셨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해야만 했음이 비쳤다. ‘아! 예수님은 정말 부활하셔야만 했구나!’ 십자가에서 죽고 끝났다면 고린도전서 15장 17절 말씀처럼 온 인류는 죄 가운데 있고 믿음은 헛것임이 그대로 내 마음을 강타했다.
확실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데도 혼미에 빠져 마귀가 주는 의심을 끌어안고 넘어졌던 나! 색안경을 끼고 ‘어? 세상이 왜 이렇지?’ 했던 나! 그런데 제자들이 생명을 걸고 전했고 믿지 않는 역사가들도 기록해 놓은 역사적 사실인 부활이 실제가 되니 복잡하던 생각들이 한순간에 떠났다. 그리고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는 말씀으로 내 신앙에 단단한 못을 박았다. 감격과 감정에 따라 휘청거리며 꼼짝 못 하던 내가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가 되니 나의 주인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살았던 죄에 대한 회개가 바로 터졌다. “주님! 다시는 부활하신 당신 앞에 다른 어떤 것도 붙잡지 않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영원한 주인이십니다.”
그 후에도 가끔 감정에 흔들리고 혼미한 생각은 들어왔지만 바로 끊으며 동아리 선교회 동료들과 함께 복음을 들고 캠퍼스로 달려나갔다. 놀랍게도 내 입에서 불덩이가 나가는 것 같았다. 그 열정은 공원도, 택시도, 지하철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활 태도도 바뀌며 ‘느네 엄마’란 별명도 사라졌다. 물론 개념 없다는 얘기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부모님과의 관계, 특히 서먹서먹했던 아버지를 꼭 안아 드리며 온전히 순종했고 방학이나 쉬는 날에는 많은 소를 기르시는 부모님의 일손을 열심히 도와드렸다. 학교 기독교 동아리 회장을 맡아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하며 복음 전파에 앞장섰고 지금은 작은교회 일꾼으로 섬기며 영혼들을 양육하고 있다.
부활을 의심했던 내가 부활을 전하는 일꾼이 됐다는 건 오직 복음의 능력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니 정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전신자 사역자의 사명까지 감당할 수 있게 됐다. 혼미 속에서 건져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자의 길을 걷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김현우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