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노래를 부를 만큼 철이 없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아버지 빈자리의 슬픔과 우울함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의 늦은 귀가에 늘 불안했고 이런 삶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 내 입은 닫혀갔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내 모든 것을 받아주는 친구가 생겨 늘 마음의 위로가 됐고 처음 행복을 느꼈다. 우리 학교에는 매년 자살이든 사고든 고2 학생 중 한 명은 죽는다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자신이 그것을 이어가겠다고 말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 울며불며 며칠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화장장에서 자살한 친구를 만났다. 한 줌의 재로 남은 친구를 보는 나는 완전히 무너졌고 그렇게 되도록 몰랐던 자책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친구의 빈자리에 무척 괴로웠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갔고 나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위에 눌리며 몸부림쳤다. 집안 사정도 더욱 어려워져 매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겨우 채워가며 다음 학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의 아픔이 남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철저히 나를 포장하며 살았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지만 혼자 있으면 상황과 환경, 자살한 친구 생각에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여행을 하며 몸부림쳐도 채워지지 않았고 위염, 장염, 급성 위경련 등으로 응급실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늘 걱정하던 친구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복음을 들려주었다. 알 수는 없었지만 기쁨과 확신에 찬 모습이 너무나 달라 한마음교회에 따라갔다. 말씀을 듣고 또 들어도 내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이번 수련회에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진짜 그만두자’는 각오로 교회로 향했다. 그런데 평소 듣던 부활에 대한 말씀이 놀랍게도 새롭게 들리며 내 신앙의 문제점이 보였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을 모르고 자기가 주인 되어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삶 전체가 굴복되는 역사가 없으면 부활은 지식입니다’고 하시는 말씀에 부활을 전혀 모르는 나를 보게 됐다.
이어서 “지금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는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미 끝났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새 피조물이 되고 다 가진 자가 되는 거예요” 하는 말씀이 그대로 가슴에 박혔다.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 사랑 앞에 바로 무릎이 꿇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내 마음대로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그림자처럼 괴롭히며 따라다니던 우울함도 사라졌고 몸도 회복돼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회사 소속으로 대학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기쁘게 감당한다. 우울의 대명사였던 내가 어느 교수님에게 “몇 달 지켜봤는데 우리 학교에서 경진씨 일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늘 웃으면서 일하니 보기가 무척 좋아요”라는 칭찬도 들었다.
날마다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다 이유가 있고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기에 상황과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더 이상 우울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공동체와 무엇이든 함께하며 나아가다 보니 힘든 일은 금방 사라지고 기쁨은 몇 배가 돼 돌아온다. 주와 공동체는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다. 마음과 뜻과 생명을 다해 주와 공동체를 위해 살다가 주님께 안기는 것이 내 중심의 소망이다.
한경진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