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를 비롯한 전향적인 조치가 있어야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일 지소미아 종료(23일 0시)를 코앞에 두고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간 협의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 데다 미국 압박까지 겹쳐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당초 문 대통령과 에스퍼 장관의 모두발언을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한·미 협의 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날 에스퍼 장관이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후 지소미아 유지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인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에스퍼 장관은 예정보다 20분을 넘겨 50분 동안 한·미 안보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 안보 협력을 위해 한·일 지소미아를 파기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에스퍼 장관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SCM 회의를 마친 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는 전시 상황에서 한·미·일 간 효과적, 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소미아가 갱신이 안 되고 종료되도록 방치를 하게 된다면 효과가 약화되는 면이 있다”며 “이런 의미에서 (한·일) 양측간 이견을 좁힐 수 있도록 촉구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또 “지소미아 종료나 한·일 갈등으로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며 “이런 공통의 위협이나 도전 과제에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정 장관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장관은 “한·일 정부가 좋은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해 (지소미아가)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안보 문제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배제 조치를 했다. 그 이후 정부는 심사숙고 끝에 종료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다키자키 시게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이날 일본 도쿄 외무성에서 만나 2시간20분간 한·일 외교국장급 회의를 진행했다. 다카자키 국장은 회의에서 한국 쪽의 ‘현명한 대응’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명한 대응은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라는 의미다. 특히 일본은 최근 연이은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거론하며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 양측은 강제징용 문제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한·일 양국이 의견 교환을 했다”며 “다카자키 국장이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조속히 시정하도록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일본 측이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자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국장은 기자들과 만나 “광범위한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지소미아와 관련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만 답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