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영하권을 기록한 매서운 한파에도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무사히 치러졌다. 전국의 시험장에서 수험생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목소리가 가득 찼다. 시험장을 잘못 찾았거나 수험표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있었지만 시민의 도움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서울 용산구 용산고 교문 앞은 14일 오전 7시부터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고등학생 60여명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학생들은 북을 치고 피켓을 흔들며 시험장에 입장하는 선배들을 응원했다. 중구 이화여고 앞에서도 보성여고와 배화여고 학생 70여명이 모여 부부젤라와 북, 꽹과리 등을 치며 응원가를 불렀다.
부모들은 시험일 전까지 잘 견뎌준 자녀를 꼭 끌어안고 어깨를 토닥였다. 김인배(57)씨는 “아들이 인생의 중요한 한 관문을 넘게 돼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고 말했다. 자녀를 시험장에 들여보낸 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오전 8시10분 입실 마감 시간이 임박하자 경찰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입실 마감 4분 전 용산고 앞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장을 착각해 잘못 왔다”고 울먹이자 대기 중이던 바이크동호회 회원이 오토바이에 태워 시험장으로 데려다 줬다. 이화외고에서는 8시10분쯤 수험생을 태운 경찰차가 급하게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서 교문을 긁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서울 시내 125곳에 순찰차와 오토바이 417대를 배치해 수험생 수송 등을 지원했다.
시험 도중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부산 해운대고의 한 시험장에서는 2교시 수학영역 시간에 한 학생이 ‘사물함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감독관에게 알렸다. 감독관은 점심시간에 사물함 뒤에서 쥐를 찾아내 잡았다. 판문점에서 직선거리로 약 13㎞ 떨어진 경기도 파주 문산 수험생들은 올해 처음 시내에 있는 문산고와 문산수억고에서 수능을 치렀다. 파주 수험생들은 1994학년도부터 2008학년도까지 인근 의정부시나 고양시로 이동해 시험을 봤다. 2009학년도에 운정, 금촌 지역에 시험장이 생겼지만 북부지역 수험생들은 여전히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대전에선 지하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험표를 지나가던 시민이 주워 수험생에게 전달한 일도 있었다. 오전 7시57분쯤 대전지하철 대동역에서 한 시민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험표를 발견해 역무원에게 알렸다. 수험표를 받은 역무원은 즉시 112에 신고했고 대전역 인근에 있던 순찰차가 이를 넘겨받아 오전 8시12분쯤 수험생에게 무사히 전달했다.
한 수험생은 대전에서 대구로 가는 KTX를 놓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시험을 못 볼 뻔했지만 대구수능본부와 코레일, 경찰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응시했다. 이 학생은 동대구역 인근 시험장에 입실 확인을 한 후 지정된 시험장으로 옮겨 시험을 치렀다. 경북 안동에서는 시험장으로 가던 수험생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병원 격리실에서 경찰관이 시험장을 경비하는 가운데 시험을 봤다. 대구경찰청은 수험생을 고사장까지 순찰차로 수송한 사례가 모두 37건이라고 밝혔다. 제주에서는 수험생이 시험 시작 전 저혈당 쇼크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도 있었다. 이 수험생은 자택에서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구급차량으로 시험장에 도착했으나 결국 병원으로 이송돼 시험을 치렀다.
수험생들은 탐구 영역이 끝난 오후 4시40분부터 순차적으로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1시간 전부터 미리 나와 기다리던 부모들은 자녀를 보자마자 포옹하고 가방을 들어주며 격려했다. 전모(50)씨는 “집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시험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나왔다”며 “수능이 끝났지만 바로 수시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걱정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험생 이준재(21)씨는 “국어와 수학은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영어가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매년 수능일에 대학입시거부 선언문을 발표해온 시민단체 투명가방끈은 이날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같은 행사를 열었다. 올해 고3인 박모군은 영상 메시지에서 “우리를 경쟁으로 몰아넣고 낭떠러지로 떠미는 주범은 대학”이라고 말했다.
황윤태 박구인 기자, 전국종합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