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창간 15주년 기념 포럼] “보험료 수입만으론 한계… 국고지원 정상화 시급”

입력 2019-11-17 18:58
효율적인 건보재정 관리 방안 포럼 참석자들. 왼쪽부터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배시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이사, 유인상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안수민 건강보험공단 재정관리실장,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이상규 기획재정부 복지경제과장, 정윤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국 보험정책과장. 박태현 쿠키뉴스 기자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 시행 이후 건보 재정건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쿠키뉴스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컨벤션홀에서 ‘효율적인 건강보험 재정관리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들을 초청 창간 15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했다.

안수민 건강보험공단 재정관리실장은 보험료수입 규모가 매년 증가하는 반면 정부지원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재원의 대부분은 보험료수입이 차지하고 있다. 총수입 대비 보험료수입 비중은 2014년 85%에서 2018년 86.4%로 늘었다. 반면 정부지원 비중은 2007년 17.3%에서 2018년 13.2%로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도 정부지원의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안 실장은 “2020년도 보험료율 결정과정에서 가입자 단체 등이 정부지원 정상화를 요구했다. 이에 내년도 보험료 인상률을 당초 3.49%에서 3.2%로 결정하고, 정부지원금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인 8조9496억원으로 결정해 비중을 확대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들은 ‘국고지원 정상화를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구조, 기업 부담, 형평성, 국민 수용성 측면에서 정부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재원마련에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며 “또 근로소득 중심의 보험료 의존은 고용을 낮추고 기업경쟁력을 하락시킨다. 아울러 세금을 통한 정부지원 확대는 소득 분위별 형평성을 높여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낳는다. 중산층 이하 계층은 세금 대비 보험료 부담이 높은 반면 고소득층은 보험료 부담이 적어, 보험료 인상보다 세금을 통한 정부지원 증가가 형평성 제고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 안 실장은 정부의 과소지원 원인을 ‘국민건강보험법 상의 불명확한 규정’ 때문이라고 봤다. ‘해당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은 정확한 추정이 어렵고,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산정될 수 있어 실제보다 과소 추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증진기금 또한 ‘매년 건강증진기금에서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의 100분의 6에 상당하는 금액을 공단에 지원한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상당하는 금액’은 명확한 금액이 아니므로 예산당국이 임의조정을 통해 축소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지원이 2022년 말까지 일몰제로 규정돼 운영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봤다. 안 실장은 “지금까지 논란을 고려할 때, 보험료 예상수입액보다 전전년도 결산상 보험료 수입을 기준으로 정부지원 비율을 명확히 결정하고, 한시적 규정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지원의 적정수준과 안정적 지원근거를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은 건강보험 재정이 지속되기 위해 정부의 안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재정수급 활로를 찾아야만 한다는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우선 병원계는 일정수준의 보험료율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유인상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저출산·고령화, 보장성 강화 정책, 경제성장률 정체, 신의료기술의 등장 등 향후 예상되는 지출을 고려할 때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정부지원을 늘리되 새로운 재정 활로가 필요하다. 건강 위해를 초래하는 정크푸드 등에 재정을 일부 부담토록 목적세를 부과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적세 명목으로 ▲알코올소비세 ▲의약품광고세 등을 제시했다.

시민단체는 건강보험가입자에 의존하는 재원조달방식을 강조할 경우 재정기반의 취약성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현재 건강보험 전체 수입 중 보험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88%다. 향후 5~6년 후 건강보험료율 상한선 8% 도달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금과 같이 건강보험가입자에 의존하는 재원조달방식이 과연 제도운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 고민해야 한다”며 “전반적으로 건강보험료 등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높이거나 조세로 조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지원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예상 수입’, ‘상당하는 금액’ 등 모호한 표현을 삭제하고 일반법으로 개정해야 한다”며 “현재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안정적인 건보재정을 위해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윤일규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법, 국민건강증진법에 나온 문제점을 개선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은 적어도 2~3조원 가치가 있는 법이고, 반대하는 국회의원도, 국민도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재정관리 강화에 힘을 실었다. 배시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이사는 “보장성 강화라는 이면에는 ‘재정’이라는 변수가 가장 핵심이다. 건전한 재정의 원칙과 변수를 살펴보면, ‘수입-지출=0’으로 수입은 늘리고 지출은 줄여야한다는 아주 간단한 공식이다. 지출도 ‘가격 X 양’이라는 두 변수가 작용하는 것”이라면서 “지난 몇 십년간 수입증가 방안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지출만 줄이고자 했고, 그 결과 소모적인 논쟁으로 사회적 비용이 컸다. 이제는 전반적인 재정관리에서 수입, 지출 양측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일단 내년도 정부지원금 최저선을 14%로 설정하고 점차 늘려가겠다는 입장이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국 보험정책과장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정부지원금 14%가 부족해 15%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달라”며 “정부지원과 관련 국민건강보험법에 ‘매년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연도 예상 수입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이라는 모호한 문구도 여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 법의 부칙에 따라 2022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 지원 규제로 돼 있어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지원 방식, 기준, 기한 등에 대해 어떻게 할지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고 있다.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한 후에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기획재정부는 건보 재정에 대한 정부지원을 명시한 건강보험법 108조가 한시법이고 법조항이 모호한 만큼 확실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상규 기획재정부 복지경제과장은 국고지원금이 20%를 충족해야 함에도 이를 왜 지키지 않느냐는 지적에 “법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며 “재정당국의 입장은 건강보험법 108조는 법 해석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또 “입법 기술적인 문제로도 볼 수 있는데, 판단의 여지를 준 정부 재량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시법으로 제정한 것은 상황에 따른 탄력적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최근의 인구변화를 고려할 때 수지 악화 속도를 따져봐야 한다”며 “건강보험은 여러 구조적 문제나 경제상황, 국민경제에 미치는 만큼 오늘 견해를 잘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건강보험 재원은 보험료수입, 정부지원금, 기타수입으로 구성된다.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 등에 따라 정부는 2007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해당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를 국고(일반회계 14%)와 담뱃세(건강증진기금 6%, 기금예상수입의 65% 이내)에서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지원 비중은 꾸준히 감소해 2018년 기준 13.2%에 불과하다. 정부지원 미지급금만 20조원이 넘는다. 일반회계의 경우 2015년까지 12% 이상을 유지하다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예산당국의 임의조정으로 지원율은 9.7%까지 떨어졌고, 건강증진기금은 담배판매 감소로 작년 3.5%까지 낮아졌다.

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