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지원은 ‘밑 빠진 독’… 저출산 대책, 기업도 봐라

입력 2019-11-14 04:06

중견기업 A사를 다니는 B씨(33)는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지 3개월 만에 이전 근무 부서로 복귀한 경험이 있다. 동료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인력 부족을 이유로 재발령을 받았었다. 동료가 육아휴직을 쓰는 데 불만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뜻 축하만 할 수 없었다. B씨는 “새로운 부서의 업무가 익숙해지던 참이라 경력 측면에서 아쉬웠다”고 13일 말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인 C사는 육아 관련 복지가 좋은 편이다. 그렇다고 ‘남성 육아휴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는 않다. 출산과 함께 육아휴직을 쓰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자녀가 어느 정도 큰 뒤 육아휴직을 신청한다.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찾아온 휴직은 동료들에게 ‘업무 부담’을 안긴다. C사에 근무하는 D씨(39·여)는 “아무래도 남성들은 뜬금없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다들 ‘괜찮다’고 하면서도 일부 반감이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임신과 출산은 개인에게만 아니라 사회에도 ‘축복’이다.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98명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선 전혀 다른 얘기다. 회사는 인력 감소를 감수해야 하고, 그 부담은 나머지 직원에게 돌아간다. 동료들은 축하를 하면서 뒤돌아서서 한숨을 쉰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도 눈치를 보느라 마음이 편치 않다. 산업 현장의 분위기는 세계 최저 출산율과 무관치 않다.


그나마 규모가 큰 기업은 형편이 낫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처음 발표한 일·생활 균형 관련 국가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선 육아 관련 복지를 아예 기대하기 힘들다. 2017년 기준으로 99인 이하 기업의 출산휴가 활용률은 규모에 따라 5.9~20.6%에 불과하다. 최장 1년을 쓸 수 있는 육아휴직 활용률은 더 떨어진다. 중소기업치고 그나마 규모가 있는 축에 드는 30~99인 사업장조차 11.9%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임신기 2시간 근로시간 단축’은 꿈조차 못 꾼다. 99인 이하 사업장의 활용률은 10%를 밑돈다.

정책이 없어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기업’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다. 기획재정부가 문재인정부 들어 다섯 차례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신혼부부 주택 공급’ ‘월 10만원 아동수당’ ‘누리과정 전액 지원’ ‘고교 무상교육’ 등 생애 전 주기를 관통하는 저출산 극복 대책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기업은 없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출산·육아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불균형이 이어진다면 정부가 다음 달 내놓을 저출산 대책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업주와 근로자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세밀하게 분석해 현장에 정말 필요한 저출산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