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서점가엔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책이 드문드문 나오곤 했다. 하지만 한국 저자가 이런 일을 벌인 적은 거의 없었다. 윤희윤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펴낸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국내 저자가 도서관을 통해 인류의 지식문화사를 일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책이다. 장구한 도서관의 역사를 면밀하게 살핀 이 책은 저자가 무려 10년간 각종 자료를 그러모으고 국내외 도서관을 두루 탐방한 끝에 펴낸 노작이다. 저자는 도서관의 역사를 다루면서 동시에 책의 역사까지 들려준다.
전반부에는 도서관의 변천사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도서관은 종교시설에 부속돼 있었고, 얼마간 수행 공간의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서서히 학문 연구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했고, 도서관에서 뻗어 나간 계몽의 기운은 근대의 개막을 알리는 예광탄이 됐다. 현대에 들어서는 공공도서관이 지식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책에는 이 같은 이야기가 온갖 사례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사진이나 그래프 같은 각종 그래픽 자료는 가독성을 크게 끌어올려준다. 서구의 도서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점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저자는 고구려 왕실의 도서관인 장문고를 시작으로 한반도의 역사에 새겨진 도서관의 무늬를 드러내는데, 밑줄을 긋게 만드는 부분이 수두룩하다.
가령 지난해 한국의 도서관 숫자는 1000개를 넘어섰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편이다. 유럽연합만 하더라도 국가마다 2013년 기준 평균 2300개 넘는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왜 선진국일수록 도서관이 많을까. 저자의 분석은 이렇다.
“근대 이후 공공도서관은 대중사회와 동행하는 지적·문화적 삶의 터전이자 중심이다. 공공도서관이 사회에 지식정보, 프로그램, 시설과 공간 등을 제공하여 대중의 지적·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때 개인의 잠재적 역량이 제고되고 사회공동체의 형성과 결속이 가능해진다.”
후반부에는 저자의 ‘도서관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비중 있게 실려 있다. 저자는 도서관을 백화점 문화센터 같은 곳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에 반기를 든다. 도서관 사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책의 끄트머리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도서관에서) 구시대적 유물인 규격화된 구조와 공간, 정숙을 강요하는 분위기, 대형 독서실에 불과한 일반 열람실, 음식물 반입 금지 같은 엄격한 규정 등을 해체할 때 도시의 서재와 거실, 사회적 장소로서의 원심력을 높일 수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