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년간 수감됐던 윤모(52)씨가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당초 연쇄살인의 모방범죄로 분류됐으나 나머지 살인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가 이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 재심의 결정적 근거가 마련됐다. 윤씨의 변호인은 30년 전 경찰이 소아마비 장애인인 그를 불법적으로 체포·감금한 채 구타와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진범임을 자백하는 제3자의 새로운 진술과 수사기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주장이 나왔으니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재심 요건은 갖춰진 듯하다. 법원이 판단할 영역이지만, 만약 진범이 아니라면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출소 후 10년간 살인범이라는 억울한 낙인과 함께 살아온 셈인 그에게 진실 규명의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춘재의 여러 자백은 경찰이 계속 신빙성을 조사하고 있다.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 처벌할 수 없다. 윤씨 재심이 진행된다면 이춘재를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할 수 있을 터이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앉아 있는 살인범을 세상의 시선 앞에 다시 불러내 세우는 것. 우리 법이 허락하는 마지막 응징 수단이지 싶다.
윤씨 재심은 한국 사회의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은 과거의 잘못된 수사를 여러 차례 사과하고 반성해야 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 검·경이 지목했던 범인의 무고함이 재심을 통해 밝혀진 사례도 이미 존재한다. 예단이 앞선 무리한 수사, 결론을 정해놓은 꿰맞추기 수사가 원인이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재심 개시 여부에는 이춘재의 자백으로 시작된 경찰의 재수사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어떤 예단도 없이 어느 때보다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하기 바란다. 만약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윤씨의 무고함이 입증된다면 그의 변호인이 말한 것처럼 “당시 사건 진행 과정에서 경찰, 검찰, 국과수, 재판부, 언론까지 왜 아무도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사설] 화성 8차 살인 재심 청구, 사법 관행 돌아보는 계기로
입력 2019-11-14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