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 나타난 신유의 은사

입력 2019-11-14 00:03

신약성경은 신유의 역사를 기록해 놓고 있으며, 신유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신약성경이 기록된 이후의 교회사에서는 신유가 이어졌을까. 이어졌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신약성경은 대략 AD 100년을 기점으로 기록이 완료됐다. 그런 까닭에 AD 100년 이후의 신유에 관한 기록은 교회사를 통해 살펴봐야 한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복음은 왕성하게 전파됐다. 성령의 권능이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유의 역사도 강력하게 나타났다. 신유와 이적과 같은 성령의 실질적인 표적들은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해주었으며, 로마제국의 박해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됐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AD 380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점점 세속화되고 정치화됐다. 성령의 운행하심 대신 거대한 종교시스템이 교회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성령의 은사들도 교회에서 제거되기 시작했다. 신유는 성인(聖人)으로 인정된 사람들만이 행할 수 있는 은사가 됐고 병자를 위해 기름을 바르고 치유를 위해 기도하던 게 변질돼 죽기 직전의 사람을 위해 행하는 종부성사가 됐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에도 신유의 역사는 이어졌다. 특히 타락한 교회를 떠나 사막으로 은둔한 수도자들에 의해 탄생한 수도원은 강력한 성령의 분출지였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이어주는 교회사의 중요한 인물인 어거스틴은 신유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전향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초기 그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은 하나님의 일회적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후 시대에는 그러한 기적들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그가 맡고 있던 한 사람이 발작으로 인해 죽은 것처럼 쓰러졌을 때, 교회가 합심해 기도하자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하고서는 신유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래전의 기적과 같은 수많은 기적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이러한 신적 능력이 중단됐다고 믿는데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그러나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교회는 계속해서 조직화되고 교리화됐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는 사라지게 됐다. 중세교회에 접어들면서 질병에 대한 이해는 전 시대와 달라졌다. 초대교회에서 질병은 악령의 영향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중세교회에서 질병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그것을 통해 사람을 훈련시키시는 방편으로 이해됐다. 병의 치유를 위한 기도는 하지 않게 됐고 병자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기도를 드렸다.

병자에게 기름을 붓고 치유를 위해 기도했던 종유의식도 죽어가는 사람의 구원을 위한 종부성사가 됐다. 종부성사 이후 회복되어 살아난 사람은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했고, 결혼도 금지되었다.

그렇지만 중세교회에서도 신유의 역사는 지속됐다. 수도원에서는 여전히 수도사들이 질병의 치료자로 활동했고 제도화된 교회를 반대하는 소수 종파들 속에서도 신유의 역사가 이어졌다.

중세시대의 종말은 종교개혁과 깊이 관계돼 있다. 따라서 근대교회에서의 신유를 살펴보는 것은 종교개혁기의 신유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지도자로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을 꼽는다. 이들은 모두 신약성경의 완성으로 은사는 중지됐다는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은사의 지속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의 경건주의, 모리비안교도, 영국의 요한 웨슬리 등은 모두 신유의 역사를 인정하고 신유의 은사를 행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가운데 은사중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전향한 사람이 있다. 바로 루터다. 그는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던 중 그 친구가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말년에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 또한 나음을 입었다. 그런 경험을 한 이후 루터는 신유의 역사를 인정했다.

개신교에서 신유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인정되고 세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있었던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을 통해서였다. 두 운동은 모두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에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운동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강력한 치유의 역사가 동반됐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신유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에서는 신유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강력하게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이 아닌 다른 것들로도 교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도와 성령의 충만이다. 그럴 때 인본주의화 되고 굳어져 버린 이 시대의 교회가 살아날 것이다.

오창균 목사<서울 대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