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경심 공소장에 담긴 불공정 사회의 민낯

입력 2019-11-13 04:01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국회를 통해 공소장이 공개되면서 14가지 혐의의 구체적인 범행 과정이 알려졌다. 공소장에 적힌 내용은 아직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이제 법정에서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검찰이 파악한 사건의 실체를 재판부가 다르게 판단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 교수 개인의 문제다. 설령 엉터리 표창장을 이용한 진학 과정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다 해도 입시가 불공정한 경쟁이었다는 사실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끼리끼리 악용해온 행태는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정 교수의 유무죄를 떠나 우리 사회는 이미 공정하지 못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 공소장은 그런 불공정의 단면을 기록한, 한국 사회에 대한 고발장이다. 곱씹으며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 교수 공소장에는 딸의 일곱 가지 스펙을 만들어낸 과정이 실렸다. 친구인 공주대 교수에게 부탁해 한 달에 한두 번 수초접시의 물 갈아주는 일을 하고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증명서를 확보했다. 역시 친구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소장에게 부탁해 분자인식연구센터의 연구활동 확인서를 얻어냈다. 같은 고교 학부모인 단국대 교수를 통해 실험실 체험 수준의 활동만으로 의학 논문 제1저자가 되게 했다. 딸이 호텔경영학과에 관심을 보이자 부산의 한 호텔에서 경영실무를 배웠다는 허위 실습수료증을 만든 다음 호텔 관계자를 통해 대표이사 직인을 찍기도 했다. 인턴, 논문, 실습 등 딸이 자기소개서에 내세운 일곱 가지 경력 가운데 진지한 노력과 실력으로 이뤄낸 대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턴 증명서는 부모의 인맥 증명서였고, 부모의 지위와 영향력이 자녀의 실력으로 둔갑한 일곱 사례의 이면에는 그런 부모들의 암묵적인 리그가 있었다.

이 공소장이 작성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은 불공정을 들춰내는 일이기에 정 교수 공소장은 유무죄를 떠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를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입시에 저런 경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갑자기 평평해질 리도 없다. 불공정을 조장하는 제도적 허점을 구석구석 찾아내 바로잡고, 편법과 반칙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가야 한다. 누군가의 인턴 증명서를 보면서 그 부모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저(低)신뢰사회에선 통합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공정의 촘촘한 제도화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