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하는 이머시브 극이 비단 ‘로마 비극’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공연계에선 관객 참여형 극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 극 외연을 확장하려는 실험적 움직임이다.
이달 초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 올랐던 ‘까마귀의 눈’(사진)은 즉흥극이란 장르에 꼭 들어맞는 무대였다. 이상의 대표작 ‘오감도’를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으로, 무대는 즉흥 연기로 꾸며지고 심지어는 연출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배우들에게 상황에 맞춘 행동과 대사를 제시한다. 눈에 띄었던 건 무대와 객석 구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관객은 미술관을 거닐 듯 배우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반응하는데, 이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날 공연의 변수가 된다.
대학로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쉬어 매드니스’도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극이다. 살인사건 용의자를 찾는 과정을 그리는데, 관객은 각 인물의 알리바이를 들으며 범인을 추리해나간다. 매 공연 추리 과정과 엔딩도 달라진다.
다음 달 21일에는 영국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가 국내에서 선보인다.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관객들은 개츠비가 초대한 파티 손님이 돼 무대 이곳저곳을 자유로이 누비게 되는데, 쫓는 캐릭터에 따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들도 변한다.
관객이 공연에 직접 개입하진 않지만, 무대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경우도 많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무대화한 ‘휴먼 푸가’는 객석을 무대에 아주 근접하게 마련하기 위해 500석 중 108석만을 활용했다. 극 관계자는 “1980년 광주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하려는 방법이었다”고 이유를 전했다. 오는 1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머시브 극을 향한 열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이머시브 공연은 큰 몰입감을 주는 것은 물론 창작자로 개입하길 원하는 관객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며 “시대 변화와 맞물려 관객을 무대의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강경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