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식 통계를 믿기 힘든 공산권 국가에서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지표 중 하나가 에너지 소비량이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전문에 따르면 신뢰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중국의 통계와 관련, 리커창 중국 총리는 세 가지 데이터를 통해 정확한 경제성장률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전력 사용량을 첫 번째로 꼽았다.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0.92% 감소했다. 올해 전체 에너지 소비는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 소비 감소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0.55% 감소한 이래 10년 만이다. 암울한 통계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빠져드는 불황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로 봐야 한다.
부문별로는 산업용 에너지 소비가 1년 전보다 1.14% 줄었다. 가정·상업용은 2.55%나 감소했다. 조선·자동차산업의 생산감소와 반도체 감산 등 주력 산업의 부진에 더해 자영업 등 상업 부문의 침체가 영향을 미쳤다. 올해 경제성장률 1% 후반 확실시, 제조업 생산능력 14개월 연속 감소, 8개월 연속 ‘경기 부진’, 상반기 기업 재고자산 사상 최대 등이 다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경제활력의 급락과 회복 장기화 가능성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고 하니 황당하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이호승 경제수석에 이어 11일에는 고민정 대변인이 나섰다. 고 대변인은 “일자리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는 전날 노영민 비서실장의 발언에 대해 경제 수치는 좋은데 체감이 문제라는 요지로 말했다. “기온이 똑같이 영상이어도 어떨 때는 따뜻하게 느끼지만 바람이 분다든지 하면 영하로 느낄 때도 있다. 본인의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고”라고 했다. 제조업·30, 40대 일자리 등 가계와 산업의 기둥 부분이 크게 줄고 초단기 임시직 일자리가 늘어나는 큰 그림을 무시한 견강부회다. 특히 재정을 곳간의 작물에 비유하며 “쌓아두면 썩는다”고 했다. 국가의 최후 보루이자 비상수단인 재정을 썩을 수 있으니 빨리 써야 하는 것으로 봤다. 청와대 공직자들의 경제와 나라 살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잘 보여준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위기를 부르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며 부정할 시기는 한참 지났다. 경제 문제만이라도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현실과 통계에 기반을 두고 정책을 펴야 한다.
[사설] 불황의 깊이 보여주는 10년 만의 첫 에너지 소비 감소
입력 2019-11-12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