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침입·스토킹 범죄 우려에… ‘본가’로 돌아가는 여성들

입력 2019-11-12 04:04

서울 관악구 봉천동 원룸에 살던 회사원 박모(26)씨는 2년간의 ‘나홀로 라이프’를 접고 지난달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취업 2년 만에 월세집을 얻어 독립했지만 홀가분함은 잠시 늘 불안에 시달렸다. 늦은 밤 현관 밖에서 나는 발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옆 건물에서 한 남성이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 집 앞까지 따라 들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하다 ‘귀환’했다. 박씨는 11일 “내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출퇴근 시간이 배로 늘고 잔소리를 들어도 가족들과 함께 사니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서모(27)씨는 최근 대학동 원룸에서 월세가 20만원 더 비싼 강서구 염창동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서씨는 “원룸 밀집지역보다는 오피스텔이 많은 동네가 안전할 것 같았다”며 “매달 월급의 10% 정도를 더 내야 해 생활이 빠듯하지만 건물 1층에 관리인이 있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올 들어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잇따르면서 젊은 여성이 1인 생활을 정리하거나 돈을 더 내고라도 가급적 안전한 동네로 옮기는 사례가 많다. 서울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관악구의 한 중개소 대표는 “취업준비생이나 사회초년생이 주로 찾는 원룸은 조금 낡아도 싼 매물이 잘 나갔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며 “여성전용 원룸이나 고층 외에는 문의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민경 부연구위원이 최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 여성이 성폭력을 당할 위험은 가족이나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 비해 4.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의 전조 증상으로 꼽히는 스토킹에 노출될 확률은 13.2배나 높았다. 이는 2012~2018년 한국범죄피해조사에서 수집한 응답 5만4000여건을 연령, 가구유형, 소득별로 비교 분석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1인 가구의 63%는 20~39세였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월 소득이 200만원 이하로 집계됐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주거 침입은 실제 스토킹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범죄학 전문가들은 스토킹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따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5만원 미만 과료형으로 처벌받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으로 처벌받은 건수는 2014년 300건에서 지난해 544건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은 지난해 6월부터 스토킹에 대한 112 신고 건수를 집계하기 시작했는데, 1년 동안 접수된 건수는 5400여건에 달했다.

차혜령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스토킹과 주거 칩임 관련 판결문을 보면 대부분 모르는 사람의 소행으로 나타난다”며 “스토킹은 단순 괴롭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거 침입, 폭행, 성폭력 등 추가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명확한 정의와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온라인에서의 스토킹 행위도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