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예산 포퓰리즘 근본 대책 필요하다

입력 2019-11-12 04:02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020년 예산안을 심사하고 있다. 11월 30일까지 심사해 본회의로 넘기면 본회의에서 12월 2일까지 의결해야 하는 것이 헌법상 절차이다. 예결특위에서 제때 심사하고 조정을 마치지 않으면 자동으로 12월 1일에 정부 원안대로 본회의에 넘어가기 때문에 이 한 달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2020년 예산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걷을 돈보다 더 쓰겠다고 한 것이다. 정부의 총수입 계획은 482조원, 총지출 계획은 513.5조원이다. 정부 살림살이 전체가 흑자인지 적자인지 요약한 수치인 통합재정수지가 2005년부터 발표된 이래 예산안 단계에서 적자를 계획한 적은 2010년에 처음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2010년에 적자 예산을 편성한 것은 2009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결과적으로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2009년에는 재정 적자가 났다. 올해 재정수지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계산이 끝난 내년에 알 수 있겠지만 작년까지 계속 늘어나던 세수가 올해 급감하면서 이미 재정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세계 경제에 불안감이 커지고 국내 경기도 빠르게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자 예산을 편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한국은 나랏빚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출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감이 드는 것은 일단 적자 규모가 시쳇말로 역대급이기 때문이다. 2010년 예산의 적자 규모는 2조원이었다. 2020년에는 31.5조원이다. 으레 하는 추경 편성을 내년에도 하게 되면 적자 규모는 아마 더 커질 것이다. 이는 총지출 증가율이 높기 때문이다. 2020년 예산의 총지출 증가율은 9.3%이다. 2019년도 9.5%로 높았는데 또 많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 증가율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총지출 증가율 평균 4.7%의 두 배 정도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더 불안한 원인은 이렇게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 수 있다는 데 있다. 최소한 세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 재정지출에 준칙이 없어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이에 대해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2016년부터 국회에 제출돼 계류 중인 재정건전화법안이 있다. 한마디로 재정건전화를 위한 규율을 마련하고 중앙관서,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장이 재정건전화의 책무를 지도록 하는 법안이다. 통과돼야 마땅한 법안이 국회에 묶여 있는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니 왜 이런 법안이 아직 잠자고 있는지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부 예산에 대한 국회의 본질적인 의무를 생각해 보면 참 해도 너무했다.

둘째, 재정지출에 있어 정부의 임의성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정부 사업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규 사업에 대해 경제성, 정책성을 심층 평가하는 것으로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조건이다. 그런데 ‘국가 정책적 추진 필요에 따른 면제’라는 애매한 항목을 이용해 면제받는 사업이 2020년에 금액 규모로 전체의 84.2%에 해당한다. 예비타당성조사의 법 조항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결정이다. 심층 평가 없이 임의로 대규모 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면 수년 안에 그 부작용이 드러나고 뒷감당은 엉뚱한 사람들과 국민 모두가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 문제인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이다. 지역구를 챙기고 챙겨주는 쪽지예산이 전체 예산을 누덕누덕하게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쪽지예산을 양성화하는 것은 어떤가. 사실 쪽지예산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럴 바에는 이를 공식화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타당한 예산사업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포함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예산을 잘 써야 늘리는 의미가 있다. 국회와 정부도 이미 잘 알 것이다.

민세진(동국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