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윤모] 1200년 전 교역이 현대에 구현된 RCEP

입력 2019-11-12 04:03

각양각색 국가들의 역사적인 협정문 타결은 큰 성과…
인도 동참 기대하며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 이룰 것


1200여년 전 이미 아시아와 인도는 교역과 문화로 연결돼 있었고, 그 중심에는 장보고와 혜초 스님이 있었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는 한국 중국 일본과 동남아시아까지 걸친 해상무역로를 개척하고 신라방을 조성한 인물이다. 혜초 스님은 천축이라 불렸던 인도로 향하는 전인미답의 5만리 길을 순례하며 왕오천축국전을 완성해 인도와 동아시아의 정신세계와 문화를 아우르는 큰 업적을 남겼다.

장보고와 혜초 스님이 이룩한 업적은 현대에 다른 형태로 구현했다. 지난 4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그리고 인도·호주·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15개국 정상들은 20개 챕터의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다. 장보고와 혜초 스님의 활동무대를 하나로 묶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무역협정이 탄생한 것이다. 함께 진행해 왔던 상품·서비스·투자 시장개방 협상도 막바지 단계로 일부 국가의 합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역사적인 RCEP 협정문 타결은 세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 RCEP는 한국 최초이자 세계 최대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인 36억명,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인 27조4000억 달러 규모 거대경제 블록이 형성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더욱 흥미롭다. 1인당 GDP 6만5000달러의 싱가포르와 1300달러에 불과한 미얀마 등 다양한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국가들이 한자리에 있다. 중위연령 26.7세인 인도, 29.2세인 아세안 10개국 등 젊고 역동적인 국가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아울러 호주·뉴질랜드와 같은 시장경제체제와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체제,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함께 모였다. 힌두·기독교·불교 국가의 공존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각양각색의 국가들이 700여쪽이 넘는 협정문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성과다.

둘째, RCEP 역내시장이 통합되면 한국 기업들의 역내 가치사슬 활용이 확대돼 정부의 신남방 정책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캄보디아·필리핀에서 원자재를 가져다 베트남에서 가공한 후 다른 아세안 국가에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활성화될 수 있다. 이미 베트남에서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 현지 기업과 협력해 개량한 농기계를 아세안 국가에 수출하는 사례가 나온 바 있다. RCEP는 이처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마련해 신남방 국가들과의 교역을 확대하고 주요 2개국(G2)에 치중된 한국의 교역구조를 다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셋째, RCEP는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등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통상규범을 도입했다. 이는 역내에서 한국 제품과 서비스, 문화 진출을 더욱 활발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아세안 지역에서는 K드라마, K팝 등 한류 인기에 이어 K푸드, K뷰티 등 각종 제품·홈쇼핑·온라인게임도 K라이프스타일 형태로 생활 속에 스며들고 있다. RCEP에서 전자상거래와 지식콘텐츠에 대한 포괄적이고 통일된 보호규범을 마련한 성과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번 RCEP 협정문 타결에 이르기까지 한국 협상단은 주말·밤샘 협상을 마다하지 않았다. RCEP 정상회담 전날까지도 각국의 장관들 사이에 막판 협상이 자정을 넘도록 이어졌다. 이번에 인도가 국내 사정으로 협정문 타결 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내년 최종서명에는 16개국 모두의 동참을 기대하며 남은 협상에서도 정부는 국민 이익을 하나라도 더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는 25~26일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개방과 협력’이라는 RCEP 정신의 유지와 발전 필요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장보고와 혜초 스님은 1200여년 전에 아시아의 넓은 세상을 안마당으로 삼고 한민족의 기상을 크게 떨쳤다. 다시 한번 그 도전정신과 개방의 DNA를 살려 RCEP를 통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이룰 것을 굳게 다짐해 본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