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을 피하다 추락한 홍콩과기대 학생이 숨지면서 홍콩 시민들이 슬픔에 잠겼다. 홍콩 시내 곳곳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행사가 열린 가운데 16세 소녀가 경찰에 성폭행당하고 낙태수술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홍콩 민심이 더욱 흉흉해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10일 홍콩 도심 센트럴의 차터가든에서는 홍콩과기대 2학년생 차우츠록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 참석한 한 여성(55)은 “자주 시위에 나가는 차우 또래의 내 아이들도 어느 날 돌아오지 않을까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날 센트럴의 타마르 공원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한 10만명의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거나 “복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한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도 이어졌다. 홍콩 시민들은 센트럴과 사틴, 정관오, 취안완, 코즈웨이베이 등 시내 곳곳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11일 동맹휴학(파과·罷課), 총파업(파공·罷工), 상점 철수 및 소비자 불매운동(파시·罷市)을 뜻하는 이른바 ‘3파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홍콩 명보는 차우씨가 숨진 지난 8일 툰먼 지역의 시위 진압 경찰이 차우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을 향해 “샴페인을 터뜨려 축하해야 한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경찰 당국은 해당자 문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홍콩 언론들은 또 한 소녀가 지난 9월 27일 홍콩 취안완 경찰서에서 경찰관 4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피해 소녀는 최근 낙태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CCTV에는 그녀가 경찰서 주변이나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녀가 설명한 경찰서와 조사실 구조도 실제와 다르다”며 “우리가 그녀를 체포했다는 기록도 없다”고 반박했다.
홍콩 경찰이 지난 5월 의회에서 여당의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처리를 저지한 혐의로 야당 의원 3명을 체포한 것도 반발을 낳고 있다. 야권은 홍콩 정부가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켜 민주 진영의 승리가 예상되는 선거를 취소하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홍콩 정국이 혼돈 속에 빠져드는 가운데 중국 본토의 홍콩·마카오 사무 책임자가 홍콩 정부에 미국 등 외세 개입을 막기 위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본토의 강경 대응이 본격화하는 신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홍콩 정부가 국보법 제정을 재추진할지 주목된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장샤오밍 주임은 전날 “외국의 간섭에 맞서 국가안보를 지킬 강력한 법규 제정이 홍콩의 시급한 과제”라며 “홍콩은 기본법 23조가 규정한 입법을 아직 완수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홍콩의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23조는 국가전복과 반란선동 또는 국가안전을 저해하는 위험인물 등에 대해 최장 3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 주임의 발언은 지난달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 결정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중전회에서는 “홍콩과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법률 제도를 완비하겠다”고 결정했고, 중국 정부도 홍콩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홍콩 정부는 2003년 국보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