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비관 프랑스 대학생 구내식당서 분신 ‘충격파’

입력 2019-11-11 04:09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란 조끼’ 시위. EPA연합뉴스

프랑스에서 대학생이 사회적 불평등을 항의하며 분신을 기도했다. AP통신 등은 9일(현지시간) 리옹 2대학에 재학 중인 22세 남학생이 이날 구내식당 앞에서 몸에 불을 붙여 전신의 90%가 화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 대학생은 직후 병원에 실려갔지만 위독한 상태로 알려졌다. 분신 시도 이유가 경제적 비관이어서 프랑스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특히 분신은 서구에서 쉽게 보기 힘든 극단적인 방법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대학생은 분신하기 전 페이스북에 “한 달에 450유로(약 57만5000원)나 되는 생활비를 감당할 힘이 없다”며 생활고를 밝혔다. 그는 전·현직 대통령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인들과 유럽연합(EU)을 비난하는 한편 분열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파시즘 및 신자유주의와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학생은 “나는 나를 죽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수아) 올랑드, (니콜라) 사르코지, 그리고 유럽연합을 비난한다”며 “이들은 모두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의 대표) 르펜과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의) 편집자들을 비난한다”며 “우리를 분열시키기만 하는 파시즘의 부상, 그리고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자유주의에 맞서 싸우자”고 촉구했다.

그는 번잡한 대학 식당 앞을 ‘정치적 목적으로’ 분신 장소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여자친구는 그의 분신 계획을 문자메시지로 전달받은 후 당국에 신고했지만 시도를 막지 못했다. 학생 단체인 ‘프랑스 남부 교육과 연대’는 성명을 내고 “학생들의 삶이 경각에 처해 있다”며 “그의 행동이 그저 개인적인 절망과 환멸 때문으로 축소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사회 안정을 위해 어느 나라보다 복지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어온 나라로 손꼽힌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됐고, 소수 기득권 엘리트층에 대한 대중의 반감도 깊어졌다. 지난해 10월 정부의 유류세 인상 방침 발표를 계기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서민 계층의 분노인 셈이다.

‘노란 조끼’ 시위 후 마크롱 대통령은 유류세 인상을 철회하고 최저임금 인상, 소득세 인하, 최고 명문 그랑제콜(엘리트 양성기관) 국립행정학교(ENA) 폐지 등의 방침을 내놓았다. 불평등 심화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차원이다. 하지만 이번 대학생의 분신 기도는 프랑스 사회에서도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