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교육 콘퍼런스’에서 매우 의미있는 발표가 하나 있었다. 어느 저명 학자의 발표가 아니라 우리 청소년 100여명이 6개월 동안의 토론을 통해 만들어낸 ‘어린이·청소년 교육·문화권리 선언문’ 발표였다. 선언문의 한 구절을 보자. ‘우리는 간섭과 차별 등 부당함이 일상에서 사라지고, 우리의 행복과 사회 발전을 위해 우리의 역량이 평등의 가치 하에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 표현에는 평등과 공정이라는 두 단어가 반복돼 있다. 그만큼 젊은세대가 평등과 공정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평등한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교육 기회, 과정 및 결과의 평등이 다르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등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단계의 고교 서열화 현상을 평등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는 어떠한가. 1980년대 후반부터 우후죽순처럼 특수목적고가 만들어졌고, 2008년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의거 전국에 50여개의 자율형사립고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국제고-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철저한 고교 수직 서열화가 고착화됐다. 학교 유형에 따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서열화됐고 학생들의 성적이 서열화됐으며 명문대 입학률 역시 이 순서대로 나왔다. 이 단계에서는 고등학교 입학 단계의 교육 기회도 불평등하고 학교 교육의 질적 수준에 해당되는 과정도 불평등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진학 결과 역시 불평등하다.
이 모든 특수 유형의 학교들은 학력의 하향화를 보완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지난 40여년 동안 진행된 평준화 정책 효과 논쟁에서 평준화 정책으로 인한 학력 하향화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쩌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기 위해 평준화를 핑계로 귀족형 학교를 만들어 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가 하나의 계급이 돼 특정 집단이 이익을 독식해서는 이 땅에 희망이 없다고 확신한다. 청소년들이 좌절하고 서로 갈등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죄악이다.
이제 우리는 ‘과연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이 미래 사회에도 유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적극 답해야 한다. OECD가 발표한 ‘학습 나침반 2030’은 역량 중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교육도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중심 교육, 개별화 교육, 진로 맞춤형 교육을 할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학교를 차별해 다양화하지 말고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려는 노력, 경쟁을 넘어 상호 배려, 존중, 협력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고교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노력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는 ‘2025년 고교 서열화 해소 및 고교 학점제 도입을 통해 모든 학생의 진로 맞춤형 교육을 구현하고 미래 역량 중심의 인재 양성을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매우 환영하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내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교학점제가 2020년부터 마이스터고를 시작으로 본격 적용된다. 2025년에는 전체 일반고에 적용된다. 고교학점제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도 학교 간 차별화는 시급히 조정돼야 한다.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지역사회와 협력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며 학교별 교과 중점 영역을 설정하는 등 교육과정 운영의 다양성 확보가 시급하다.
고등학교체제의 변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수많은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축소 지향의 사회를 맞아 고등학교체제도 질적으로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돼야 한다. 차별, 경쟁, 서열화를 강조하던 시대에서 공정, 평등, 협력, 배려, 융합,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고등학교체제 개편, 서열화 철폐가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고등학교까지의 보통교육을 정상화하는 일이 미래교육을 위한 첫걸음이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