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는 머저리(Khamenei is an ass).”
이라크 청년 에사(23)는 수도 바그다드 시내 중심지 타흐리르 광장에 쪼그려 앉아 붉은색 스프레이로 거침없이 낙서를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대놓고 모욕하는 내용이었다. 하메네이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은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이란은 이라크 안보·정보 당국과 연결돼 있어 이란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은 신상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에사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NPR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잃을 것이 없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지만 일거리가 없다. NPR은 “대다수의 시위 참여자처럼 에사도 이라크 사회의 고착된 빈곤의 책임을 다른 나라(이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부패한 이라크 정치인들 탓으로 돌렸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이란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자국 정치인들이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지난달 31일 조건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대는 6일에도 바그다드를 관통하는 티그리스강 다리 위에서 진압에 나선 군·경찰과 충돌했다. 현지 언론들은 수십명의 시위대가 부상을 입었고, 부상자들을 돕던 의료진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이라크 전역에서 사망자만 300명 가까이 발생하고, 8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의 일차적 원인은 만성적인 민생고다. 이라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국가 중 하나지만 국민은 빈곤에 허덕인다. 4000만여명의 이라크 인구 중 25세 이하가 60%나 되지만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실패한 공공서비스와 만성적인 부패 탓에 이라크인들은 정부 부처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일부터 모든 영역에서 뇌물을 바쳐야 한다.
다만 이번 시위가 이례적인 것은 그 배경에 이웃 국가 이란을 향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는 데 있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라크 시위대는 부패와 외세 개입에 신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동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각각 연대국을 꾸리고 각축전을 벌이는 구도다. 시아파가 인구의 3분의 2, 수니파가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라크는 시아파 진영으로 분류된다.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이후 이라크에는 친미 정권이 들어섰지만 2009년 미군의 퇴각이 시작되자 종파 갈등 및 내전이 이어지면서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 혼란을 틈타 친이란 세력이 빠르게 세를 불렸고 이라크의 실질적인 지배층으로 자리잡았다.
과거 이라크에서 발생한 시위들은 시아파 정부에 대항한 수니파 시위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위의 참여자 대부분은 시아파다. 시위대는 종파 간 분열을 거부하며 이라크는 이란이 아닌 이라크인들에 의해 통치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란은 이번 시위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친(親)이란 성향의 이라크 현 정부를 흔들기 위해 공작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종파적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이번 시위의 성격을 두고 서방과 이란이 아전인수격 여론전을 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