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들은 장르를 콕 집어 정의하기 어렵다. 정통 장르물이 아니라 로맨스와 스릴러, 호러 등 이채로운 요소들이 버무려진 복합장르물이 대부분이어서다. 장르 퓨전을 통해 시청층을 폭넓게 아우르려는 시도인데, 완성도에 따라 성패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최근 복합장르물이 가장 선호하는 소재는 ‘추리’다. 드라마들 저마다 범인 찾기에 여념이 없다. 로맨스물도 예외는 아니다.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KBS2)이 그렇다. 싱글맘 동백(공효진)과 열혈 청년 용식(강하늘)의 로맨스가 주 서사이지만, 그 사이사이 묻어있는 스릴러가 이 극의 진짜 백미다.
이 극의 남다른 서스펜스는 바로 동백을 위협하는 연쇄살인범 ‘까불이’에게서 온다. 까불이는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등장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최근까지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흥식(이규성)의 아버지 등 까불이의 정체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관심에 힘입어 시청률 20%(닐슨코리아)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첫 방송된 ‘VIP’(SBS)도 추리 요소로 쏠쏠한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경우다. 입소문을 타면서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더니 최근엔 9%대까지 올라섰다. 백화점 큰손 고객들을 관리하는 직원들을 그린 극인데, 화제가 된 건 다름 아닌 VIP 전담팀장 박성준(이상윤)의 ‘불륜 상대’였다. 극은 전담팀 직원인 이현아(이청아) 송미나(곽선영) 온유리(표예진) 등의 은밀한 사생활을 번갈아 비추면서 성준의 진짜 내연녀는 누구일지 끊임없이 추측하게 한다.
문근영 김선호 주연의 ‘유령을 잡아라’(tvN)도 로맨스와 스릴러, 코믹 요소가 버무려져 있다. 지하철 경찰대 신참 형사 유령(문근영)과 2년차 경찰 고지석(김선호)이 지하철 유령으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살인마를 쫓는 과정을 미스터리하게 풀어낸다.
그렇다면 복합장르물이 최근 부쩍 활기를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장르 퓨전은 기존 서사를 비틀어 흥미를 주고 시청자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는 트렌드”라며 “추리 소재는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게 곧 화제로 이어지기에 특히 선호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 인기를 끈 극들을 죽 살펴보면 이질적 장르 간 배합이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최근 종영한 이지은 여진구 주연의 ‘호텔 델루나’(tvN)는 호러와 로맨스를 맛나게 버무리며 호평받았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어쩌다 발견한 하루’(MBC)를 비롯해 ‘퍼퓸’(SBS) 등 발랄한 로맨스물들도 판타지와 미스터리 등 이색적 요소들을 하나씩 곁들이는 추세다.
다만 장르 퓨전이 흥행을 꼭 보장할 순 없다는 게 중론이다. 고른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가령 ‘유령을 잡아라’는 배우들의 호연에도 스릴러와 로맨스가 어지럽게 풀어지면서 최근 2%대로 주저앉았다. 정 평론가는 “시청자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엉뚱하고 관성적인 장르 결합은 외면을 받기 마련”이라며 “‘동백꽃 필 무렵’처럼 로맨스, 스릴러 등 요소들이 저마다 서사적 힘을 갖추고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장르 복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