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각한 활자중독자였다. 무언가 읽지 않으면 불안해서 책은 물론 광고문, 표지판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읽었다. 책을 무척 좋아한 부모님 영향으로 집안에 가득한 새롭고 흥미진진한 책 속에 빠져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란 말까지 들었다. 집의 책이 모자라 ‘고전 100선’, ‘이상 문학전집’ 마르크스의 ‘자본론’,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 어렵고 심오한 책부터 최신 유행만화까지 빌려 섭렵했다. 학교공부와 일상생활은 너무 시시했다.
이렇게 지식이 쌓이는 사이에 삶도 인간관계도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내면 심리까지 분석하며 내 틀 속에 갇혀갔다. 손에 잡히는 책은 단숨에 다 읽었고 과일을 싼 신문봉지까지 모조리 읽었다. 그 사이 작은 생각도 순식간에 가지치기해 기본적인 생활도 뒤틀렸다. 사과도 잔류농약 생각에 식초 물에 담근 후 다시 소금물에 담그고 베이킹 소다로 빡빡 씻은 후 껍질을 깎아먹으며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기형아 낳는 거 아냐?’라는 걱정을 했다. 활자 읽는 것 이외의 일상은 무기력해 박제가 되는 것 같다는 어느 소설 속 독백이 내 독백이 됐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중풍으로 혼수상태가 돼 바로 춘천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의 모습은 책 속의 세계와 달리 너무 비참하고 충격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8개월 만의 죽음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인간은 결국 한 줌 재인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왜 사는 것일까?’ 죽음 앞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라는 본질적 물음 앞에 다시 섰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 이야기를 했다. 성경은 수많은 책들과 너무나 달랐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 그것은 사람의 언어가 아니었다. 4대 성인 중 한 명이었던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한 예수는 정말 하나님이든가 아니면 거짓말쟁이 미친 사람 둘 중 하나였다.
이 고민을 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예수님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모를 따라 한마음교회 여름수련회에 참가했다. 목사님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 복음’이라고 하셨다. ‘성경대로? 예언대로 부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게바에게, 열두 제자에게,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배신했던 베드로, 형을 미쳤다고 한 동생 야고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러 다녔던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 사실을 증거하다 순교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제자들의 인생을 한 순간에 변화시킨 천지개벽보다 큰 사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정말 만났구나!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 정말 맞구나!’ 드디어 내게 고백이 터졌다. 부활을 통해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만나니 죄가 선명히 보였고 이어서 내가 주인 되어 예수님을 죽인 악랄한 죄인임을 알게 되자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면서 책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는 저절로 끊어지며 삶이 가볍고 간단해졌다. 자연히 과일도 물에 씻어 껍질 채 맛있게 먹었다. 내가 쌓은 지식 속에 갇혀 소통도 막혔지만 지금은 종일 자매들과 함께 훈련관에서 천국의 삶을 누린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모두 진짜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한다. 몇 년 전 국회의원에 출마한 아버지의 TV 방송 연설문을 쓴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 한 올 한 올 지혜의 말씀을 주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박연설이 됐다. 지금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책보다 틈날 때마다 예수님을 전한다. 그렇게 많은 책과 활자들을 들이켰어도 만족과 진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혼미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지만 이제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신바람 나게 달려간다.
박정연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