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전에서 안드레 고메스의 발목 부상을 야기한 손흥민(토트넘)은 리그 출전정지보다 더 힘든 심리적 충격을 겪고 있다. 손흥민은 에버턴전 이후 휴대폰도 끈 채 부모님 집으로 향했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심리치료를 제공키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프로스포츠에서 멘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손흥민 사례처럼 스포츠 심리대응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해외 구단의 경우 상시적으로 부상 위협에 노출된 선수들을 위해 심리적인 관리까지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멘털 코치를 상주시키기도 하고, 전문 심리 상담을 운영하기도 한다.
독일·잉글랜드 등 다양한 리그를 경험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5일 “뛰었던 팀들에 거의 상주하는 멘털 코치가 있었다”며 “큰 수술을 한 뒤 부상공포증이 생겼는데 상담에서 부상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얼마든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극복해냈다”고 소개했다.
K리그에서도 조금씩 스포츠 심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7월부터 K리그1·2의 20개 구단 유소년팀(15세·18세) 총 350명의 선수들을 상대로 심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 업체가 심리 검사를 한 후 맞춤형 상담을 제공한다. 연맹 관계자는 “유소년들의 성장을 위해서 심리 부분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20개 팀 외에도 울산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는 각각 2016년과 2017년부터 자체적인 유소년 심리 교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성인 팀에서는 체계적 대응이 부족한 편이다. K리그1엔 상주하는 멘털 코치를 둔 구단이 없다. 심리 상담을 운영하는 구단도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뿐이다.
예산 문제도 있지만 ‘심리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원인이다. 프로선수라면 심리 문제는 본인이 극복해야 하고 심리 상담은 정신적 문제가 생겨야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여자축구대표팀 등에서 멘털 코칭을 진행해온 윤영길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신체와 심리 문제는 동시에 발생하는데 심리 문제는 선수 개인이 해결하도록 두는 게 현재의 구조라 두려움과 걱정을 토로하는 선수들이 많다”며 “심리적인 도움을 받아 부상에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회복 기간이 짧아진다는 통계도 있다”고 밝혔다.
심리 상담을 운영하는 구단에선 만족도가 높다. 수원 관계자는 “구단에서 필요한 선수를 선정하거나 신청을 받아 사내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한다”며 “경험한 선수들은 재활기간 단축이나 심리적 압박 극복에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고 말했다.
포항 관계자도 “올해 ‘플레이어 퍼스트’를 구단 가치로 정하면서 전문가 상담을 진행한 4명의 선수가 모두 ‘일반적인 조언과는 달랐다’며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고 밝혔다.
해외 추세 등을 고려해 상담 전문가를 많이 양성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윤 교수는 “심리 상담을 원하는 구단도 많지만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충분한 상담 커리어를 갖춘 전문가가 적어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선수들 사이에 조금씩 심리 상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 해설위원은 “최근엔 스포츠 심리를 공부하는 분들도 많아져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심리 관리가 확산된다면 선수들이 뛰는 환경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