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강국’은 옛말… 신성장동력 발굴·육성도 겉돈다

입력 2019-11-06 04:04

“저희도 보고서를 쓰면서 매번 눈앞이 캄캄합니다.” 한국의 제조업 위기를 묻자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한숨부터 쉬었다. ‘제조업 강국’이었던 한국 경제는 예전 같지 않다.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던 제조업에서 취업자 수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18개월 연속 내리막이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정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도 ‘제조업 몰락’이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만 해도 82였던 제조업 BSI는 올해 9월 71까지 떨어졌다. 이 지수는 지난해 6월 이후 80선을 밑돌고 있다.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기준치(100) 미만이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위기의 핵심을 ‘돈’ ‘인력’이라고 지목한다. 미래차,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동력 개발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제조업의 판도는 대대적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 독일 등 제조업 강국에 비해 연구·개발(R&D) 투자가 저조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독일이 자동차 관련 R&D에 넣은 돈은 49조원에 이른다. 같은 해 일본은 30조원, 미국은 20조원을 썼다. 한국은 8조원에도 못 미쳤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내년도 소재·부품·장비 R&D 예산을 대폭 확대했지만, 오랫동안 누적된 격차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여기에다 대기업의 노동경직성, 중소기업의 인력 미스매치는 심각하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5일 “산업현장을 가보면 중소기업에선 일손이 부족해 아우성이고, 대기업에선 고비용 인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도 깊어지는 위기감을 감지하고 있다. 제조업 부흥을 위해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도 내놓았다. 하지만 스마트 산업단지 구축 등은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다.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부족하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육성도 겉돈다. 정부는 2017년부터 미래차, 드론 등 8대 선도사업을 정해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차량호출서비스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처럼 ‘신산업-기존산업 충돌’이 불거졌을 때 정부, 정치권은 조정력이나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 위기가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산업구조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