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 공관을 개보수하면서 4억7000여만원의 예산을 임의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감사원이 4일 밝혔다. 재판의 충실화를 위해 배정된 예산까지 공사비로 끌어다 썼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2017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대법원장 공관 개보수 예산으로 정부에 15억5200만원을 요구했는데 기획재정부와 국회 심의 과정에서 9억9900만원으로 삭감됐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이듬해 8월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관 개보수 사업을 공고한 뒤 관련 사업비로 국회가 의결한 예산보다 6억7000만원 많은 16억7000만원을 배정했다. 그래놓고는 공사비가 부족하자 사실심(1, 2심) 충실화를 위해 편성된 예산에서 2억7875만원, 법원시설 확충·보수 예산에서 1억9635만원을 가져다 썼다. 그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이나 국회의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한다.
국회의 예산 심의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법령 위반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일을 버젓이 벌인 것이다. 법을 누구보다도 잘 지켜 모범이 돼야 할 사법부가 초법적 행태를 거리낌 없이 행했다는 사실 앞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예산을 처음 편성해 요구한 시점이 2016년 5월로 전임 대법원장 때였지만 예산이 전용되고 실제 공사가 이뤄진 시점은 현 김명수 대법원장 때다. 사법 개혁과 특권 폐지를 공언한 김명수 사법부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여졌다. 부당 사용한 예산 가운데 가장 큰 항목은 공관의 외관을 고급 외국산 석재로 바꾸는 공사였다. 재판 관련 예산까지 전용해 공관을 치장한 것은 몰염치하다. 사법부가 여전히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에 흠집이 갔다. 김 대법원장이 예산 전용 사실을 모르고 있었더라도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무겁게 느껴야 할 것이다.
감사원 감사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실제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국외 파견·연수 법관 등에게 2000여만원의 재판 수당이나 재판 업무 수당을 지급하는 등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법과 상식 위에 군림하려는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사법 개혁 약속은 공허해질 뿐이다.
[사설] 재판 예산 전용해 대법원장 공관 치장한 사법부
입력 2019-11-0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