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새지평… 포항 ‘신중년사관학교’를 아십니까

입력 2019-11-04 21:10
신중년사관생도들의 흥겨운 레크리에이션 수업 모습.

경북 포항시에 ‘신중년사관학교’라는 명물이 있다. 겉으로는 여느 노인대학 같지만 내용상으로는 독특한 커리큘럼과 학사제로 운영되는 등 완전히 차별화된다. 정해진 시간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10여 명씩 소속 학과와 담당교수가 있는 점에서부터 확연히 구별된다. 여기에 입학식과 졸업식, 생일파티, 소풍, 수학여행이 있는가 하면 모든 학생이 악기, 댄스, 게이트볼 등의 동아리 활동을 한다. 주위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해마다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졸업생들의 요청으로 대학원 과정까지 개설됐다. 그러다보니 전국 곳곳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신중년사관학교가 지역의 시골교회에서 만들어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포항시 장기면의 양포교회 김진동(사진) 담임목사가 2014년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만든 교양 프로그램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김 목사는 한 노인의 고독사에 큰 충격을 받고 노인들도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교장을 맡아 대학교 형태의 4년제 8학기의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신중년사관학교에서는 어르신들이 국문, 정보통신, 체육, 음악, 국악, 전통예술, 서예, 스트레칭 등 11개 과목에서 학업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다양한 커리큘럼과 엄격한 학사관리로 입학경쟁률이 3대 1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4학년 8학기제… 생도 자부심에 지원 러시

졸업생들은 한결 같이 신중년사관학교로 인해 한층 젊어지게 됐다고 말한다. 많은 친구들과의 이별이 아닌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의 행복노후 설계와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는 당연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신중년사관학교의 출발은 그렇게 순조롭지 않았다. 초창기 엄격한 교칙 적용으로 생도들로부터 다소 불만도 샀다. 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세인의 평가가 예상을 뛰어넘어 긍정적으로까지 변하자 생도들도 자긍심을 갖게 되면서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띠게 됐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된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 하고 자기 주장만 옳다는 고집을 부리기 십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 엄격한 학칙적용이 오히려 사관생도라는 자부심과 어우러지면서 또 다른 세계, 즉 순수한 젊은이로 되돌아간다는 희열이 큰 보람으로 승화되고 그 심적 변화가 사회기여로 이어졌다. 이들이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시내 전 지역 대청소 같은 것도 그 일환이다. 이런 성공사례는 당연히 전국의 교회는 물론 지자체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지난 2017년 6월 시사투데이로부터 노인교육기관의 롤모델을 창안했다는 공로로 대한민국 신지식인경영혁신 교육대상을, 7월 스포츠서울로부터 한국인 & POWER KOREA 교육혁신기관 대상을 받았다.

국내뿐만 아니다. 2015년 4월에는 해외연수차 미국에 갔다가 마침 일본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도들 92명이 일정을 미룬 채 200여㎞나 달려가 재미동포들과 함께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면서 미국 전역에 방영되고 포항시민들의 애국심을 알렸다.

2016년 3월에는 독일 ARD 국영방송이 신중년사관학교를 방문, 운영실태를 취재해 4월 1일 ‘고령화 사회문제 해결에 진일보한 지혜’라는 내용의 프로를 내보내기도 했다.

미국연수 중 아베 연설 소식 듣고 항의 시위

우리나라에서도 평균수명이 높아짐에 따라 고령화사회 문제 대처방안이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노인 의료비 증가, 사회적으로는 노인 빈곤문제에 이어 고독으로 인한 우울증 그리고 자살까지 증가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신중년사관학교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에 관련해서는 양포교회 담임목사인 김진동 교장의 철학과 혜안이 깊이 작용했다.

김 교장은 무엇보다 노인문제에서 건강 유지가 관건이라고 보았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야 하며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공간을 갖지 못하던 노인들이 신중년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고독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발전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을 가짐으로써 더욱 자신감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학교의 구호인 ‘감사’다. 모든 것에 감사하도록 전인교육을 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되니 자연히 타인에 대한 겸손과 사랑과 배려가 넘쳐났다. 세 번째는 나누는 삶을 일상화하자는 것이다. 네 번째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와의 연결이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해’를 ‘이 나이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도록 교육한 것이다.

지난해 신중년사관학교는 세번째 문집을 발행했다. 두 번째까지는 학내용으로 소책자로 제작했지만 이번에는 단행본으로 내놨다. 글의 수준도 높고, 내용이 너무 좋아서 소책자로 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주위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신중년사관학교는 2014년 3월 1기를 첫 개학해 2019년 2월로 2기까지 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 6기까지 200여명의 재학생이 있고 2020학년도 7기를 모집 중에 있다.

포항시에 주소를 둔 만 65세 이상 심신이 건강한 시민 중 1차 서류와 2차 면접을 통과한 자로서 1주일에 한번 출석하고 오전에는 전교생이 다 같이 신나고 건강한 스트레칭과 다양하고 유익한 특강수업을 한다. 오후에는 학과수업으로 희망하는 학과를 선택해 체육(탁구 게이트볼), 음악(합창 생활음악 기악), 국문, 국악, 서예, 정보통신 등 노년의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수업을 받는다.

경북도청을 방문한 신중년사관생도들.

다양한 특강·사회봉사 참여 ‘든든한 울타리’

새마을 정신운동 발대식을 통한 학교 교육방침으로 매년 6·25 및 월남전 참전용사 초청 감사행사(에티오피아 UN군 참전용사 초청), 시내거리 정화운동, 교도소 방문, 장애인이나 노인복지센터 방문 등의 봉사활동과 오케스트라, 합창, 댄스 등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나아가 매년 행복가게 운영, 사랑나눔 음악회, 공연 등 사랑나눔 기부활동으로 장학금 지급, 지진피해성금 전달, 새터민 어린이 돕기 등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배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다양한 학과별 수업 외에 봄소풍, 가을운동회, 동아리 해외연수, 각종 견학, 1박2일 캠프(여름 겨울), 졸업여행, 작품전시회, 학예발표회, 친구초청 잔치 등도 진행된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