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없는 아베… 대화의 문 열었지만 ‘출구’는 안갯속

입력 2019-11-05 04:02
문재인 대통령이 4일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3개월 만에 ‘밀착 환담’을 통해 양국 간 갈등 해소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해결책 마련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와 함께 장차관급 이상의 특사나 정상회담 등을 통해 양국 간 갈등 매듭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양국 정상이 4일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가진 환담에서 ‘대화를 통한 양국 관계 현안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에 이어 이번 환담을 통해 양국이 외교채널 등을 통한 외교적 협의를 공식화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외교채널뿐 아니라 추가적인 ‘고위급 협의’를 제안했고, 아베 총리가 ‘모든 가능한 방법’을 언급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당장 강경화 장관이 오는 22~23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하면 이를 계기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할 가능성이 있다. 또 올해 중순부터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한·일 특사급 협의도 이번 정상회동을 계기로 가속화될 수 있다. 만약 외교적 협의를 통해 양측 간 간극이 좁혀진다면 연말에 중국에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과 함께 극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한 것이 현실이다. 당장 우리 정부가 지난 8월 연장 중단을 선언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오는 22일에 종료된다. 일본은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이를 계기로 추가적인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려면 일본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한국 제외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건 상태다. 일본이 먼저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상 출구를 마련하기 힘든 구조에 놓인 셈이다.

김정숙 여사가 4일 방콕 국립박물관에서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의 완고한 입장도 재확인됐다. 아베 총리는 환담에서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준수해 양국 관계를 되돌릴 계기를 만들 것을 요구하며 일본의 원칙적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계기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고,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일본 전범기업의 자산 매각 조치 시 한국에 대한 공세를 펼 수 있는 상황에서 먼저 움직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할수록 일본의 입장은 더 완고해지는 모습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일 정상 회동으로 양국 간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자신의 원칙에 맞는 해결책을 한국이 가져오라는 입장인 것”이라며 “대화는 하겠지만, 원칙은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5일 방한하는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통해 해법을 제시할지도 관심사다. 한 외교소식통은 “스틸웰 차관보는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재고를 강하게 요청할 것”이라며 “미국이 한·일 문제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은 없지만, 한·일 고위급 인사가 마주앉을 명분을 제공한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방콕=임성수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