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요 사업들의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할 당시 주목받았던 곳은 소재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들이었다. 이들 기업은 여론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주가도 올라 일명 ‘일본 수혜주’가 됐다. 하지만 곧바로 3분기 수익성 증대 효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당초 우려했던 것만큼 일본의 수출 규제가 확대되지 않았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핵심 소재를 단시간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관련 업황 개선 여부가 향후 실적 개선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에 쓰이는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은 4일 “일본의 수출 규제 당시 추가 공급 문의는 있었으나 당장 대체물량 공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대체물량을 찾는다면 우리 말고도 미국, 독일, 대만 업체 중에서 웨이퍼 공급이 가능한 회사가 많고, 일본이 실제로 수출을 중단한 건 아니라 큰 변동은 없다”고 전했다.
SK실트론은 세계 웨이퍼 시장의 10%, 국내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전 세계 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SK실트론의 3분기 실적은 오는 14일 발표된다. SK실트론 측은 이번 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개발 중인 SK머티리얼즈는 아직 양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관련 매출은 발생하지 않았다. SK머티리얼즈는 “올해 말까지 에칭가스 개발을 완료하고 샘플이 나오면 고객사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6개월가량 공정 테스트를 거치면 하반기쯤부터 실질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산에 성공한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에칭가스 국산화로 여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고객사 확보 문제는 별개다. 까다로운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려면 좋은 제품을 내놔야 한다. 단순히 ‘국산화 프리미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업계의 신뢰 확보를 통해 고객사를 넓혀 나가는 것이 개발 이후의 숙제로 남아 있다.
탄소섬유를 국산화한 효성첨단소재도 지난 8월 주가 급상승으로 화제가 됐으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19.8% 감소했다. 이는 주력 상품인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와 베트남 스판덱스 사업 등의 부진 때문이었다. 중국 자동차·타이어 시장의 역성장으로 중국·국내 법인의 판매가격이 하락했고, 중국 거래처 매출채권 대손상각 등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결과다. 다만 탄소섬유 사업에 대해서는 “장기 계약 고객 확보로 매출액 증대 및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기 계약 고객 증가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효성 관계자는 “이전부터 논의해오던 계약이 성사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업계 특성상 핵심 소재 교체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공급처 변화가 단시간에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따라서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객사들이 수급 다변화를 추구할 경우 관련 매출이 꾸준히 늘 것으로 내다봤다.
소재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결국 관련 업황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석유화학 분야 업황이 살아나는 게 수익성 개선의 핵심 요소이라는 얘기다. 특히 국산화에 성공한 실리콘 웨이퍼, 에칭가스는 모두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로 반도체 경기가 개선되면 수요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