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로 나선 이멜다?… 아들 용꿈 위해 과거사 뒤집기

입력 2019-11-05 04:07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사치의 여왕’으로 악명 높은 이멜다(사진) 여사가 과거사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봉봉(Bongbong)’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의 대통령직 도전을 돕기 위해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절을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마르코스 주니어는 2022년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3일(현지시간) 이멜다 여사의 역사 왜곡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킹메이커’를 조명했다. 킹메이커는 미국 다큐멘터리 작가 로렌 그린필드의 작품으로 오는 6일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NYC DOC)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그린필드는 “처음에는 (마르코스 일가의) 사치 행각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내 현재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며 “부와 권력이 결합함으로써 돈으로 표를 사고 소셜미디어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 당선됐으며 72년 계엄령을 선포해 장기 집권을 시도했다. 하지만 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실각해 미국 하와이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89년 사망했다. 집권 기간 동안 마르코스 일가가 부정 축재한 재산은 무려 100억 달러(11조7000억원)로 추산되지만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금액은 1726억 페소(3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특히 이멜다 여사는 명품 구두 3000켤레로 상징되는 도를 넘는 사치 행각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멜다 여사는 마르코스 가문의 완전한 복권을 이뤄내기 위해 공식 역사를 뒤집으려 한다는 게 그린필드의 분석이다. 이멜다 여사는 다큐멘터리에서 “감각은 진짜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언론 보도와 상충하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대안적 진실’과 일맥상통한다. 이멜다 여사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의 많은 일은 잊어야 한다. 사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멜다 여사는 마르코스 일가가 피플 파워에 쫓겨 망명길에 올랐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는 마르코스 일가의 망명생활을 두고 “우리는 납치됐었다”고 주장했다. 이멜다 여사는 8년간 이어진 계엄령이 “필리핀 국민들에게 주권과 자유, 정의, 인권을 가져다줬다”며 “마르코스의 최고의 시기”라는 궤변을 펼쳤다. 필리핀 정부가 마르코스 일가의 재산 일부를 환수한 사실을 부정하며 “그들은 구두 3000켤레 말고는 뼈다귀 하나 건지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순을 넘긴 이멜다 여사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건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2016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를 업고 부통령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레니 로브레드 현 부통령을 상대로 지금까지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린필드는 마르코스 주니어가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멜다 여사의 장녀 이미 마르코스는 아버지의 고향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3선 주지사를 지내고 지난 5월 선거에서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