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옆자리 이끈 文… 11분 환담, 물꼬 텄다

입력 2019-11-04 19:26 수정 2019-11-04 21:29
문재인 대통령이 4일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양 정상은 무릎이 닿을 정도로 밀착해 앉은 채 11분간 대화를 나눴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태국 방콕에서 예정에 없던 11분간의 단독 환담을 가졌다. 두 정상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이후 13개월여 만에 대화를 나눴다는 점, 오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담’에 준하는 중요한 환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던 양국 관계에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서 대기실에서 오전 8시35분부터 46분까지 단독 환담을 가졌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현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매우 우호적이며 진지한 분위기에서 환담을 이어갔다”며 “양 정상은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양국 현안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정상은 최근 양국 외교부의 공식 채널로 진행되고 있는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관계 진전 방안이 도출되기를 희망했다”며 “문 대통령은 이 외에도 필요하다면 보다 고위급 협의를 갖는 방안도 검토해보자고 제의했으며, 아베 총리도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노력하자고 답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고위급 협의는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 대변인은 “고위급 협의는 장관급이 될 수 있고, 그 위 단계의 협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환담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지소미아 기한 연장 여부, 강제징용 배상 판결 갈등 해소 방안 등에 대해 짧게라도 논의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깜짝 환담’은 문 대통령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정상들 대기 장소에 먼저 도착한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다른 정상들과 환담했다. 이후 문 대통령이 회담장에 늦게 도착한 아베 총리를 이끌어 앉아서 대화하자고 권하면서 환담이 성사됐다. 환담은 사전 조율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환담도 한국어와 일본어 통역이 아니라 영어 통역을 매개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 발언을 한국 측 통역이 영어로 전달하고, 이를 들은 일본 측 통역이 아베 총리에게 일본어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전날 ‘갈라 만찬’에서도 웃으며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최근 두 정상은 문 대통령 모친상과 일본을 강타한 태풍 하기비스를 계기로 위로전을 주고받는 등 우호적인 기류를 형성해 왔다.

양 정상이 이날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는 22일 지소미아의 기한이 종료되는 점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의 수출규제에 이어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한·일 관계에는 또 다른 장벽 하나가 생기게 되는 셈이다. 최근 마크 내퍼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 등 미국 고위급 인사들이 지소미아 연장을 강하게 압박한 것도 환담이 성사된 배경일 수 있다.

환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은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양국 간 문제에 관한 일본의 원칙적 입장을 확실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이미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방콕=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