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채권금리는 되레 오름세다. 미·중 무역협상이 진전되고,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가 잦아들면서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여기에다 시들해진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기대감도 채권금리 상승에 한몫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55%에 거래됐다. 종가 기준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 1일(1.47%)보다 0.08% 포인트 올랐다. 지난 8월 19일(1.09%) 바닥을 찍은 이래 꾸준한 상승세다. 지난 7월과 지난달 기준금리가 각각 0.25% 포인트 내려간 것과 대조적이다.
통상 경기 침체 시기엔 기준금리와 채권금리 둘다 내려간다. 향후 경기 침체가 우려되면 한은은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린다. 투자자들도 경기 전망이 좋지 않으면 손실 위험이 낮은 채권에 투자한다. 채권 수요가 몰리면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많아져 채권가격은 상승하는데, 이때 채권금리(수익률)는 떨어진다. 채권은 만기 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고정돼 있어 채권가격이 오른 만큼 금리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기준금리와 채권금리가 반대로 움직이는 ‘기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저 대외 불확실성이 줄어든 것이 핵심 원인이다.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돈이 쏠리는 것이다. 우혜영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협상이 재개되고, 브렉시트가 연기되면서 불확실성이 감소하자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위험자산 투자를 늘렸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낮아진 점도 채권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 “두 차례 금리 인하 효과를 지켜보겠다”고 밝힌 만큼 시장은 오는 29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당분간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내년에 발행 예정인 대규모 국채도 변수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내년 정부 예산안에 세입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60조2000억원 규모의 국채 발생 계획을 포함시켰다. 우 연구원은 “국채 발행으로 시중에 국채 물량이 많아질 것을 예상해 채권 시장에선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채권금리 상승은 은행 대출금리도 끌어올렸다.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은 금융채(AAA) 5년물 금리가 기준인데, 최근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채도 채권의 일종이라 전반적인 채권금리 상승을 따라간다”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채권시장에 과도하게 반영됐던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대출금리도 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8년 10월에도 기준금리가 0.50% 포인트 내려갔으나 시장에서 추가 인하 가능성에 확신이 서지 않자 금융채 금리는 상승했었다.
전문가들은 올해까진 채권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김 연구원은 “은행이 최근 금융채 발행을 서두르는 것만 봐도 향후 채권금리 상승으로 조달비용이 오를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직도 경기 회복이 어렵다는 측면에서 기준금리는 결국 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채권 분할 매수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