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사는 동안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일까. 살아있음, 살아내는 게 아닐까. ‘천하보다 귀한 생명’(마 16:26)이라고 했다. 생명을 살리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온갖 것을 내는 땅은 생명의 필수 요소다.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생명은 지속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원은 고갈되고 오염은 극심한데다 기후마저 붕괴 직전이다. 위기를 넘어 나와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살게 하는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공동체는 생명과의 관계를 살려 풍성하게 해준다. 공동체가 무너지면 관계는 빈곤해진다. 에너지와 먹을거리만 봐도 그렇다. 공기와 물과 땅을 해치며 생산된다. 일상에서 누린 것의 부산물이 수많은 생명을 해치고 서로의 관계를 끊는다. 삭혀 땅에 뿌리면 먹을거리가 돼 돌아오던 똥이나 오줌은 오염물질로 바뀐 지 오래다. 물도 제대로 순환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순환과정 안에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이 끼어들어 사람은 물론 수많은 생명이 병들고 있다. 계절을 거스른 먹을거리는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관계의 회복이 시급하다. 자연이 파괴되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생명과의 관계를 회복할 공동체가 필요하다. 마음을 기댈 수 있고 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을 함께 풀 수 있는 관계망으로서의 ‘생명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의 회복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특별히 교회라면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충분히 만나 사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 하셨으니(마 25:45), 지역의 사회·생태적 약자를 찾아내 돌보는 일은 필수다. 요즘 교회는 지역 공동체 안에 있기는 하나, 친교하며 하나 될 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고 있더라도 이대로 따르는 경우가 드물다.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이유로 세상, 곧 신음하는 이웃을 등지거나 세상과 친교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등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겐 상황적 위기 이전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위기를 느끼는 감수성이 무뎌졌다. 위기를 넘어서려면 교회가 먼저 지역 주민은 물론 온갖 동식물과 공존해야 한다. 그러면 교우의 일상이 풍성해지고 생명의 공동체도 회복될 것이다. 창조세계가 ‘의식주를 채워주는 곳’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현존을 비춰주는 거울이요 하나님께 가 닿게 해주는 사다리’임을 알아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죽임에서 살림으로’의 전환을 선언하자. 생명 살림이,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매 주일 반복하는 예배와 교육, 친교와 봉사가 생명의 ‘죽임’이 아닌 ‘살림’으로 전환되도록 살피자. 교회 공간 안에서 사용되는 전기와 물, 음식, 여러 물품을 고를 때 ‘지극히 작은 자’로서 자연과 이웃을 기억한다면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때로는 공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녹지 부족은 심리적 안정감을 해할 뿐만 아니라 동식물과의 공존을 힘들게 한다. 공간의 대형화는 교회 구성원 간 의사소통을 어렵게 한다. 교통수단과 주차장 문제, 에너지 다소비는 물론 쓰레기 문제도 필연적이다.
우선 ‘전환’을 선언하고, 생명 살림을 향해 한 걸음 내딛자. 전환을 선언하고 스스로 살고 살리는 삶을 사는 순간 세상도 조금씩 살아날 것이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도, 교회 공간과 차량을 생태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전환의 시작은 죽임이 아닌 생명 살림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줄 알고, 더불어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전환마을의 흐름도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돼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와 교회의 전환이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는 피조물’(롬 8:22)을 죽임이 아닌 살림으로 옮기는 시작점이길 소망한다.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